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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098
한자 水營里
영어공식명칭 Suyeong-ri
이칭/별칭 수영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수원군 삼봉면 수영동에서 수원군 봉담면 수영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8월 14일 - 수원군 봉담면 수영리에서 화성군 봉담면 수영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8년 4월 1일 - 화성군 봉담면 수영리에서 화성군 봉담읍 수영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1년 3월 21일 - 화성군 봉담읍 수영리에서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01㎢[2021년 1월 기준]
가구수 4,860가구[2017년 12월 기준]
인구[남/여] 12,973명[남 6,438명|여 6,535명]

[정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수영리(水營里)봉담읍의 북동쪽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매송면 천천리, 동쪽으로는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남쪽으로 동화리, 서쪽으로 상리와 접한다. 자연마을로는 즌말과 후촌(後村)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수영리『화성시사』(2005)에 따르면 고려 말 마을에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에서 수영말[水營洞]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화성지』수영리(水營里)로 표기되어 있다. 자연마을 중 즌말은 조선 시대 옹기를 굽던 곳이라는 의미로 점말[店村]로 불리다가 즌말이 되었다고 한다. 후촌은 수영리의 가장 뒤쪽에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는 설과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라서 이름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수영리는 조선 후기 수원군 삼봉면(三峰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삼봉면과 갈담면이 통합하면서 수원군 삼봉면 수영동에서 수원군 봉담면 수영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화성군이 신설되면서 화성군 봉담면 수영리가 되었다. 1998년에 봉담면봉담읍으로 승격하고,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하면서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수영리는 전체적으로 낮고 평평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중서부 지역을 동화천(桐化川) 본류가 북서류하며, 수영리들과 역전들 등의 평야를 형성한다.

[현황]

수영리의 전체면적은 3.01㎢이다. 2017년 12월 기준 인구는 4,860가구에 12,973명으로 남자가 6,438명, 여자가 6,535명이다. 주요 교통로는 수영리의 중앙으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봉담~동탄 고속도로]가 지나며 남쪽에는 수영리동화리에 걸쳐있는 봉담나들목[봉담IC]이 있다. 지방도 제309호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와 나란히 지나가며, 북동쪽에 국가지원 지방도 제84호가 동서로 지나간다. 북쪽으로는 수인분당선이 동서방향으로 지나지만 정차역은 없으며, 가장 가까운 정차역은 오목천역이다. 교육 시설로 수영초등학교, 수현초등학교, 수현중학교가 있다.

수영리의 서남부는 상리에서부터 이어진 화성봉담2 공공주택지구의 동부에 해당한다. 화성봉담2 공공주택지구는 2007년에 지정되었으며 약 1,438,522㎡에 11,437호수의 주택을 조성하는 택지개발 사업이다. 주택과 함께 들녘오름공원 등의 근린공원, 근린생활시설 및 상업시설 등이 설치되면서 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수영리의 동남부는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일부와 함께 택지개발지구인 효행지구로 지정되어 약 1,379,000㎡에 11,749가구의 미니신도시를 건설하는 도시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수영리에서 대규모 청동기 시대의 집터 등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토지이용계획안을 수립 중이다. 그 외 수영리의 중앙과 북부에도 공동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중소규모의 제조업 공장들과 농지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수영리 유적이 있다. 수영리 유적은 집터 350여 기가 발굴된 화성시 최대 규모의 청동기 유적이다. 집터 2기와 구덩이 1기가 기원전 3,090~2,890년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집터의 규모는 면적 99㎡로 대형이다.

또 다른 청동기 집터 유적으로 수영리매송면 천천리에 걸쳐서 분포하는 천천리 유적의 7호 집터가 있다. 길이 29.1m, 너비 4m, 면적 116.4㎡ 규모로 경기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 시대 움집 중 가장 길다. 집터에서 출토된 토기가 100점 이상이며, 옥을 포함한 석기가 72점 등으로 최대 규모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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