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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890
한자 佛敎
영어공식명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태완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개설]

우리나라의 불교는 삼국 시대에 전래되어 지역과 풍토 및 민족성 안에서 독특하게 전개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갈양사(葛陽寺), 창성사(彰聖寺), 만의사(萬儀寺) 등의 주요 사원이 화성 지역의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용주사가 1780년 정조의 명에 의한 중창 이래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최고의 사찰로 유지되었다. 이후 화성 지역의 불교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용주사를 중심으로 민족 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삼국 시대 화성 지역 불교]

4세기 말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불교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왕권 강화의 주요한 사상이었고, 각 국가와 지역별로 독자적인 불상과 불탑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화성 지역은 삼국 영토 확장의 각축장이었기 때문에 삼국시대 불교와 관련한 자료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불교문화는 경주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9세기 이후 선종의 영향으로 9산선문이 운영되면서 금강산과 지리산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경기 지역에는 여주 남한강 지역의 혜목산(慧目山)이 기록에 남아 있을 뿐이다.

삼국시대 국경지역이었던 까닭에 화성 지역의 불교문화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화성 인근의 몇몇 사찰들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설화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염거화상(廉居和尙)과 관련한 창건 설화들이 주목된다.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용주사 범종 명문에는 문성왕 16년(854) 염거화상이 주조한 범종이라는 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그 음각이 후대에 추각된 것으로 추정되고 내용의 진위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갈양사 창건에 염거화상이 결부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자료로 꼽힌다. 또한 옛 수원부 관할 구역이었던 평택의 심복사와 용인의 용덕사도 염거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로 유학을 가려고 배를 타려다 해골물을 마신 현장은 남양 마산포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 원효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경주로 돌아오고, 의상은중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따라서 화성지역은 마산포당성을 통해 당나라와 교역했던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여 중요한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려 시대 화성 지역 불교]

고려의 건국 이후 불교문화는 개경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태조 왕건의 진전사찰인 봉업사(奉業寺)가 죽산에 건립되면서 경기 지역의 불교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광종 때 여주 고달선원이 선종의 대표 사찰로 부상하였고, 현종 때 법상종으로 이름있는 안성 칠장사는 혜소국사가 주석하였다.

현재의 용주사 자리에 있었던 갈양사(葛陽寺)는 광종 때 혜거국사가 입적한 곳이다. 광종의 어명에 따라 중창된 갈양사는 태자가 직접 법회에 참여할 정도로 중시되었다.

현종의 즉위에 공헌했던 수원 최씨 가문의 최사위(崔士威)가 새로 짓거나 중수한 15개 사찰 가운데 화성 지역인 수주(水州) 자복사(資福寺)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위치를 알 수 없다.

한남정맥의 중심이 되는 광교산은 89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불교의 성지였으며, 현오국사가 주석한 용인 서봉사(瑞峰寺)와 진각국사가 주석했던 수원 창성사(彰聖寺)는 화엄종의 중심사찰이었다.

고려 후기 화성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은 만의사(萬儀寺)였다. 과천 청계사(淸溪寺)와 더불어 조인규(趙仁規)의 원찰이 된 만의사는 훗날 조선을 개국하는데 공을 세운 승려 신조(神照, 생몰년 미상)와도 연결된다. 천태종 백련사의 승려였던 신조는 고려말 개혁파 승려들과 뜻을 같이하며 조선 건국에 일조하였다. 원래 신조는 공민왕과 우왕의 측근세력이었으나 1376년 해주싸움에서 이성계의 참모 역할을 할 정도로 이성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그 후 1388년(우왕 14)에 위화도에서 회군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신호(功臣號)를 받고 만의사에 머물면서 천태종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 화성 지역 불교]

조선 건국 이후 숭유억불 정책 하에 불교계는 크게 위축되었고, 불교의 여러 종파들이 통폐합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었다. 태종은 전국의 사원을 조계종·천태종·화엄종·자은종·중신종·충남종·시흥종 등 7개 공파 88개 사찰로 개편하였다. 이때 남양의 홍법사는 조계종 24개 사찰 가운데 하나였고, 수원의 창성사는 자은종 17개 사찰 중 하나였다. 따라서 홍법사와 창성사는 화성 지역의 조계종과 자은종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조선 초기 남양의 관화사는 혁파되어 연희방 흥덕사에 땅과 백성이 할당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국의 승려들이 왜군에 맞서 싸우는 주체로 역할하였고, 이는 불교계가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정부는 불교계에 대한 예우와 명분을 위해 의승의 표상이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당, 호남의 처영과 호서의 영규의 공을 드높이기 위해 밀양과 해남 대둔사와 묘향산에 각각 표충사를 설치하여 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전국의 산성이나 병영 등의 군사 요지에 승군들을 배치해 상비군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조선후기 경기 지역의 불교는 봉선사. 봉은사, 신륵사 등과 같이 왕릉의 능침사와 왕실의 원당으로써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성 지역의 불교는 1790년 현륭원의 원찰로서 용주사가 중창되면서 크게 변화하였다. 사도세자의 현륭원정조 건릉의 능침사찰로서 용주사는 국가 사찰의 지위를 얻고, 전국 사찰을 총괄하는 불교계의 중심 축으로 부상하였다. 조정에서는 승려들을 원활하게 관리하기 위해 도총섭제도에 더하여 규정소(糾正所)를 설치하였는데, 광주 봉은사, 양주 봉선사, 남한산 개원사, 북한산 증흥사와 수원의 용주사로 5곳이 규정소로 지정되었다. 이들 규정소 중 봉은사는 강원, 봉선사는 함경, 개원사는 충남·경상, 중흥사는 황해·평안, 용주사는 전라 지역 사찰을 각각 관할하였다.

[근대 이후 화성의 불교]

대한제국은 일본 불교의 적극적인 포교에 대한 대응으로 1902년 동대문 밖 창신동에 원흥사를 세우고,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를 설치해 불교를 관리하고자 하였다. 사서관리서는 ‘국내사찰현행세칙’을 반포해서 불교의 대중화와 도시화를 시도하였다. 각도 수사찰 16개 사찰로 하여금 관리하게 했는데, 이중 경기좌도는 봉은사, 경기우도는 봉선사, 그리고 경기남도는 용주사가 각각 담당하게 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불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통해 조선불교를 30본산으로 나누어 통제하고자 하였다. 이중 경기도는 봉은사, 용주사, 봉선사, 전등사가 본사로 각 본사 주지는 사법을 제정하여 총독부에 인가 신청을 하여 허락을 받아야 했다. 용주사의 담당 구역은 경기 남부지역인 수원군,남양군, 안성군, 죽산군, 음죽군, 진위군, 용인군, 및 서울 인근의 고양군 일부, 그리고 평안북도 철산군, 의주군의 일부의 55개 사찰과 암자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한말 이래 일제 강점기 용주사를 중심으로 한 화성 불교는 경기 지역 불교의 중심지로 역할하였다.

[현대 화성의 불교]

해방 이후 1954년 조선불교조계종은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이름을 바꾸고 31본산제도를 교구제로 전환하였다. 이에 용주사는 제2교구 본사로 지정돼 경기 남부 지역의 안양, 과천, 의왕, 시흥, 화성, 수원, 용인, 평택, 안성, 여주, 이천 등에 위치한 59개 사찰과 암자를 말사로 거느리게 되었다.

1987년 전통사찰보존법에 따라 화성시에 등록된 전통사찰은 만의사, 봉림사, 신흥사, 용주사 4곳이다. 이중 신흥사용주사 2곳은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다.

2021년 현재 사자후닷컴에 등록된 화성시의 사찰은 32곳으로 조계종 13곳, 태고종 8곳, 본원종 2곳 외에 조동종, 일붕종, 불승종, 원효종, 보문종, 해동종, 반야수교원, 선학원이 각각 1곳씩 있다.

지역별로는 우정에 5곳, 팔탄향남에 각각 4곳, 봉담,서신, 매송에 각각 3곳, 동탄, 정남, 장안에 각각 2곳, 남양, 송산, 태안, 비봉에 각각 1곳씩 있다.

[참고문헌]
  • 『화성군사』 (화성군사편찬위원회, 1990)
  • 『화성시사』 (화성시사편찬위원회, 2005)
  • 『조선의 원당』 1-화성 용주사(국립중앙박물관, 2016)
  • 황인규, 「수원 최씨, 김씨 가문과 고려중기 불교계」(『수원문화사연구』4, 수원문화사연구회, 2001)
  • 사자후닷컴(http://www.saj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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