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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35
한자 密陽 朴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한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세기 - 박희인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입향
본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입향지 밀양 박씨 입향지 -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밀양 박씨 세거지 -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지도보기|남양읍 남양리지도보기|남양읍 수화리지도보기|팔탄면 구장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언침
입향 시조 박희인

[정의]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희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 박씨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한다. 박언침의 아들 박욱(朴郁)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삼한벽공도대장군(三韓壁控都大將軍)에 올랐다고 한다. 이후 밀양 박씨는 고려의 유력 성씨가 되었으며, 조선 건국 시에는 박위(朴葳)가 이성계를 도와 회군공신이 되었다.

화성 지역 밀양 박씨는 조선 시대 이후 꾸준히 관료를 배출하며 양반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왔다. 17세기에는 박유구(朴惟矩)가 판관, 박태주(朴泰株)가 선전관을 지냈으며, 19세기 말에는 박윤회(朴胤會)와 박승훈(朴承勳)이 감역을 지냈다. 또 효자와 열녀도 다수 배출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한명윤(韓明胤)의 아내 밀양 박씨는 열녀로 정려를 받아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실리기까지 하였다. 이외에 나계술의 처 밀양 박씨도 열녀로 읍지에 실렸고, 박장철(朴長哲)은 효자 정려를 받았다. 그러는 한편, 근대기에 접어들면서는 서울의 배제학당 등으로 유학을 가 신식 교육을 받는 사람도 많았다.

[입향 경위]

밀양 박씨의 화성 지역 입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것 같다. 충헌공파에 속하는 장지동 밀양 박씨의 경우, 15세기에 박희인(朴希仁)이 진위현[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삽다리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반면, 마도면 송정리밀양 박씨는 규정공파(糾正公派)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장지동의 충헌공파와는 다른 계기로 입향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밀양 박씨는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성씨이다. 화성 지역의 대표적인 동성 마을은 장지동[옛 동탄면 장지리]으로, 2004년까지도 장지리 웃말, 아랫말, 넘말 전체의 80%가 밀양 박씨였다. 농지 개혁 이전에는 천석꾼이 3명이나 있던 부촌이었다고 한다.

한편, 1930년대 조사를 보면, 동탄면 장지리[77세대] 외에, 남양읍 남양리[37세대], 수화리[63세대], 팔탄면 구장리[52세대]가 동성 마을로 보고되었다. 이어 1950년대에는 동탄면 장지리[101세대], 마도면 송정리[32세대], 남양읍 남양리[33세대], 신외리[36세대], 수화리[83세대], 팔탄면 구장리[82세대], 향남읍 백토리[24세대], 화리현리[46세대] 등이 동성 마을로 확인되었다. 그 외에도 동탄면 오산리, 남양읍 문호리, 봉담읍 수기리, 서신면 용두리, 송산면 육일리고포리, 팔탄면 율암리, 정남면 신리 등지에 밀양 박씨가 모여 사는 사실이 조사된 바 있다.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총 3,098세대 13,976명의 밀양 박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밀양 박씨 33,979명, 밀성 박씨 796명이 조사되었다.

[관련 유적]

밀양 박씨 관련 유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에 있는 박장철 효자각이 있다. 1885년(고종 22)에 처음 세웠으며, 1972년 중수하였다. 화성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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