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전1리 은진 송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52
한자 溪田-里 恩津 宋氏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계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계전1리 은진 송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계전리 지도보기
성격 동성 마을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계전리에 있는 은진 송씨 집성촌.

[개설]

계전1리 은진 송씨 집성촌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을 본관으로 하는 은진 송씨의 동성 마을이다. 은진 송씨의 시조는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둘째 아들 송천익(宋天翊)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선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어, 고려에서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으로부터 세계를 잇게 되었다.

은진(恩津)은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한 지명으로, 덕은(德恩)·시진(市津) 두 군현의 이름을 합한 것이다. 덕은군은 본래 백제의 덕근군(德近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덕은군(德殷郡)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덕은군(德恩郡)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시진현은 본래 백제의 가지내현(加知奈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시진현으로 고치고 덕은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덕은과 시진을 모두 공주에 편입시켰으며, 1397년(태조 6)에 덕은·시진을 합쳐 덕은(德恩)으로 하고 감무를 두었다. 이후 세종 때 은진(恩津)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 은진군이 되었다가, 1914년 논산군에 병합되었다.

[명칭 유래]

은진 송씨 집성촌이 자리한 계전1리에는 골새, 새마실, 용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골새는 새마을과 말리 사이 골짜기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새마실은 말리 북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용전은 마을에 있던 용전사(龍田寺)라는 절에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계전1리 은진 송씨 집성촌의 형성 계기는 명확하지 않다. 골새마을의 경우 1700년경 개척된 마을이라 하며, 용전마을은 1645년(인조 23) 경주 최씨가 처음으로 개척하였다고 한다. 은진 송씨가 언제부터 두 마을에 거주하였는지는 불명이다.

[자연환경]

은진 송씨 집성촌이 자리한 계전1리하양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의 서쪽에는 청통천이 흐르고, 동쪽에는 풍락제가 있어 물이 풍부하다.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있다. 농업에 적합한 환경 덕분에 계전리는 과거부터 풍족한 마을로 알려져 왔다. 마을 뒤에 있는 산에는 복숭아 재배 단지를 조성하였다.

[현황]

은진 송씨 집성촌이 자리한 계전1리에는 2020년 현재 122세대 246명[남자 135명, 여자 11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 있는 은진 송씨 관련 유적으로는 원계서원(遠溪書院)이 있다. 원계서원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된 양오당(養吾堂) 송응현(宋應賢)과 송응현의 아들 양곡(陽谷) 송걸(宋傑)을 배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1927년에 사림의 공의에 따라 ‘원계서원’이란 이름을 얻었다. 골새마을 뒤쪽 산자락에 동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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