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13
한자 新上里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s in Sinsa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대학로 1051[신상리 1114-6]|대학로 1089[신상리 968]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박장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5~6세기 - 신상리 고분군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4월 13일 - 신상리 고분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11월 30일 - 신상리 고분군 영남대학교 박물관 발굴 조사 종료
소재지 신상리 고분군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대학로 1051[신상리 1114-6]|대학로 1089[신상리 968]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성격 고분군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신상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위치]

신상리 고분군금박산에서 서남쪽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능선의 끝자락에 분포한다. 동쪽으로는 5㎞ 거리를 두고 대창천, 서쪽으로는 4㎞ 거리를 두고 오목천, 북쪽으로는 2~3㎞ 거리를 두고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약 7㎞ 거리를 두고 임당동·조영동·부적리 고총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신상리 고분군은 1986년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 알려졌다. 당시 이미 경부고속도로와 경산-하양간국도에 의해 동-서, 남-북으로 잘려져 있었으며, 경산IC 진출입로 및 경산휴게소 건설로 유적이 훼손된 상태였다. 고속도로를 경계로 남쪽에 들어선 진량중·고등학교와 상가 건축물들 역시 유적을 크게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경부고속도로 동대구-경주 구간 확장 공사에 따른 구제 발굴 조사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우선 2002년 6월 26일부터 8월 12일까지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시굴 조사 결과 30기 이상의 삼국 시대 중·대형 봉토분 및 층위를 달리하는 널무덤·덧널무덤·돌무지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이어 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3년 4월 13일부터 11월 30일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경부고속도로를 기준으로 하행선 측[부산 방향] 확장 구간을 가지구, 상행선 측[서울 방향] 확장 구간을 나지구로 구분하였다. 하행선의 경우 지형 훼손이 심하여 발굴 조사의 편의상 다시 3개의 소지구[가-Ⅰ·Ⅱ·Ⅲ]로 나누었다.

가Ⅰ지구는 신상리 유적 전체로 볼 때 하행선 확장 구간의 중앙 부분이며, 동서 방향으로 긴 형상이다. 삼국 시대 덧널무덤 2기가 발굴되었다. 가Ⅱ지구는 경산휴게소 서쪽의 구릉 정선부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구릉의 사면 일부이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 고분 49기 등이 발굴되었다. 조사된 고분은 돌무지덧널무덤 37기, 덧널무덤 3기, 돌덧널무덤 4기, 돌방무덤 2기, 독널무덤 1기 등이다. 가Ⅲ지구는 북서향으로 뻗어 내린 구릉에서 삼국 시대 고분 15기 등이 조사되었다.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 2기의 덧널무덤, 11기의 돌무지덧널무덤, 1기의 돌덧넛물덤, 1기의 돌방무덤이 조사되었다.

나지구는 서쪽 경계 끝과 휴게소 출입로 부분 확장 구간에서 삼국 시대 고분 20기가 조사되었다. 돌무지덧널무덤 12기, 덧널무덤 5기, 돌덧널무덤 2기, 독널무덤 1기 등이다. 이 중 20호 묘는 이혈 ‘명(明)’자형 주·부곽식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조사된 고분 중 가장 대형급이다.

[출토 유물]

신상리 고분군에서는 뚜껑 굽다리 접시, 굽다리 접시, 뚜껑, 굽다리 긴 목 항아리, 긴 목 항아리, 그릇 받침, 굽다리 항아리, 큰 항아리, 짧은 목 항아리, 굽다리 사발, 손잡이 달린 잔, 적갈색 사발, 항아리, 쇠 창, 손칼, 쇠 화살촉, 귀걸이, 미늘쇠, 재갈, 띠고리, 집게, 쇠끌, 둥근 고리 큰 칼, 쇠도끼, 낫, 다면옥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신상리 고분군에서 확인된 고분 중 약 40여 기를 고속도로 휴게소 내에 복원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진량고등학교 서편 일대와 선한능력교회 뒤편으로 조사되지 않은 고분이 일부 잔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상리 고분군은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축조되었는데, 고분의 크기나 출토 유물의 질에서 경산 지역 중심 고분군이라 할 수 있는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사적 제516호]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정한 영역을 다스리던 읍락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한편, 돌무지덧널무덤이 다수 조사되었는데, 경주 지역의 장송 의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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