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량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390
한자 餘粮縣
영어공식명칭 Yeoryang-hy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방용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 - 마진량현을 여량현으로 개칭
폐지 시기/일시 940년 - 여량현을 구사부곡으로 강등

[정의]

757년부터 940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여량현(餘糧縣)은 본래 압량군(押梁郡)[혹은 압독국(押督郡)]의 마진량현(麻珍良縣)[혹은 마미량현(麻彌良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여량현’으로 개정하였다. 견훤(甄萱)에게 항복하였다는 이유로 940년(태조 23)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강등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여량현은 757년(경덕왕 16) 군현제를 강화하고, 전국의 지명을 한자식으로 고쳐 쓰는 과정에서 마진량현[혹은 마미량현]을 ‘여량현’으로 바꾸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1 양주조에는 “지미왕 때 압량소국[혹 압독소국]을 쳐 빼앗아 군을 설치하였다. 경덕왕이 [장산군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장산군(章山郡)으로 영현(領縣)은 셋이다. 해안현(解顔縣)은 본래 치성화현(雉省火縣)[한편 미리(美里)라고도 이른다]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 여량현(餘糧縣)은 본래 마진량현(麻[미(彌)라고도 쓴다]珍良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의 구사부곡(仇史部曲)이다. 자인현(慈仁縣)은 본래 노사화현(奴斯火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따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경주(慶州) 건치연혁(建置沿草)조에 “신라의 마진량현[혹은 마미량현]인데, 경덕왕이 여량현으로 고치고 장산군에 속하도록 하였다. 후에 [견훤군에] 항복하였으므로 부곡으로 삼았다가 지금[조선]의 이름으로 고쳤다. 효종(孝宗) 계사(癸巳)년(1653)에 자인현(慈仁縣)에 옮겨 속하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내용]

여량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757년 경덕왕이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한자식으로 개정할 때 마진량현에서 여량현으로 고치고 장산군(獐山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변천]

여량현은 940년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강등되었다가 1018년(현종 9) 경주(慶州)에 영속되었다. 1653년(효종 4)에 자인현으로 이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량현의 설치와 운영은 통일 신라 시대의 군현제 강화 및 중국식 문물 제도의 수용을 반영하는 사례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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