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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중방농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94
한자 慶山中方農樂
영어공식명칭 Gyeongsan Jungbang Nongak
이칭/별칭 중방농악,경산중방두레농악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중방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유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월 18일 - 경산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무형문화유산)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제5회 황산벌 전국국악경연대회 풍물부문 대상(농수산식품부장관상)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1년 - 제14회 황토현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국무총리상)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5년 - 칠곡 세계사물놀이겨루기마당 대상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7년 - 제20회 황토현 전국농악경연대회 은상(국회의원상)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8년 - 제20회 김제 지평선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성격 농악
기능 구분 민속놀이, 집단놀이, 두레농악
문화재 지정 번호 경산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무형문화유산)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중방동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설]

경산중방농악은 경상북도 경산시 중방동에서 자생하여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에 주민들에 의해 다시 연행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급속한 도시화와 마을 인구 감소로 인해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가, 2004년에 창립된 중방농악보존회에 의해 경산중방농악의 주요 내용이 발굴 및 복원되었다. 경산중방농악은 당산제와 지신밟기가 연관된 축원농악과 판굿이 발달된 농악으로, 농사굿과 진굿이 함께 어우러지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었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기까지의 농사 과정이 12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농악에는 없는 뱀쫓기 동작과 물레방아 진놀이를 특징으로 한다. 2021년 1월 18일에 경산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생성배경 및 유래]

중방동은 고려 시대부터 이미 관아가 있었고, 경산의 대표적인 논농사 지역이었기에 일찍부터 지방 관아의 나례 의식을 본뜬 동민들의 정초농악 또는 논농사와 관련된 두레농악이 발전되어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방농악은 정월 대보름 제사를 지내기 위해 대내림을 하는 천왕굿과 동제 이후의 지신밟기, 여름철 세벌 논매기 이후 농민들이 모여 농악을 하는 농사굿 형태로 전승되었다. 그러다 점차 마을 규모가 커지며 농악의 규모 역시 확대되어 농민의 삶과 애환을 표현하는 농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경산중방농악은 마을 공동체 단위의 제사나 놀이가 제한받았던 일제 강점기에도 연행되었다. 주민 서활수[남성, 1936년생]는 해방 이전과 해방 후 6‧25전쟁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정초 당산제와 지신밟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증언하였다. 6‧25전쟁 이후 1960년대가 되면서 중방동에서는 동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는데, 중방동은 경산시의 중앙에 자리해 일찍부터 도시화가 시작되어 이른 시기부터 마을 공동체 전통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공동 농악기와 마을기는 전승되었기에 행사가 있을 때는 주민들이 모여 농악을 치기도 했다. 주민들의 구술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춘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주로 상쇠를 맡았다고 한다. 이후에는 오좌섭[남성, 1932년생]이 상쇠가 되어 농악대를 이끌었다고 한다.

경산중방농악은 1981년에 당시 경산군 남천면 금곡리에 살던 한병길[남성, 1934년생]이 중방동으로 이사 오면서 되살아났다. 한병길이 상쇠를 맡아 농악단이 결성되었고, 정초에 주민들의 집을 돌며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축복을 비는 지신밟기를 행하였다. 이후 서진돌[남성, 1939년생]이 쇠가락을 전수받아 상쇠를 맡았고, 뒤를 이어 현재 경산중방농악보존회 회장인 이승호[남성, 1955년생]가 상쇠가 되어 진법과 가락을 재정비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중방동 주민들의 경험과 구술을 통해 전승되던 중방농악은 보존회 창립 이후 체계적으로 채록 및 수집되기 시작하였다. 4대 상쇠인 이승호는 중방농악의 전승 내용을 채록하고 고증하기 위해 2004년에 중방농악보존회를 창립하였다. 이후 대구대학교 삼성현연구소 김종국 박사에게 연구 자문을 받고, 석대권, 손태도, 김경배 교수 등 전문적인 면담조사자를 선임하여 중방동 원로들과의 면담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중방농악의 연희 형태, 당산제 봉행 과정, 지신밟기 사설과 같은 주요 내용을 발굴하였다. 2013년에 조사 내용을 담은 『경산중방농악』을 발간하고, 이를 근거로 전승 교안을 만들어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인 자체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편성 및 연행과정]

경산중방농악의 편성은 악기잽이, 잡색, 기수로 이루어진다. 악기편성은 쇠 2~4명, 징 2~4명, 북 8~10명, 장구 6~8명, 소고 8~10명, 띵가 1~2명, 태평소 1명 등이며, 잡색은 대감 1명, 색시 1명, 포수 1명, 주모 2명, 머슴 2명 등이 있고, 기수는 농기수 3명, 보존회기수 3명, 영기 2명, 용기 5명, 상징기 2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인원은 공연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된다.

경산중방농악의 연행은 모임굿에서 시작하여 12마당으로 이어진다. 각 연행의 명칭과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모임굿 : 연행을 위하여 모든 치배들이 채복과 악기를 점검하면서 상쇠를 중심으로 4열 종대로 집합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다드래기 장단으로 흥을 끌어올려 출정을 알린다. 이는 거사가 진행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길굿 : 긴삼채가락으로 기세등등하게 출정하는 군사들의 모습과도 같이 乙자진을 형성하면서, 논밭두렁을 걸어가듯 느린덧배기 장단에 흐느적거리는 동작으로 1년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

인사굿 : 자진모리장단에 정렬하여 지금까지 준비한 진놀이를 보여드리겠다는 뜻으로 관중을 향하여 정중히 인사한다.

제1마당 오행굿 : 연꽃이 피고 지는 형상을 말하며 느린덧배기 가락으로, 민중들과 함께 어울리는 신을 위로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제2마당 농사진굿[土] : 덧배기 장단을 통하여 농토를 마련하고, 논밭갈이를 하고, 물을 대는 등 자신들이 농사꾼임을 알린다.

제3마당 오방진 : 느린덧배기장단에 오방을 만들어 온마을의 만사형통을 기원하고 전후 후진걸이로 농사일 동작을 연상케 한다.

제4마당 농사진굿[水] : 농사에 필요한 물을 의미하며 자진모리장단에 전후동작으로 물을 대는 형상을 취한다.

제5마당 허허굿 : 잡귀를 물리치고 농사일에 방해 요소를 물리치는 굿판으로, 느린덧배기와 빠른덧배기 장단에 맞춰 공식적인 연행을 시도한다.

제6마당 물레방아굿 : 자진모리가락에 맞춰 추수한 곡식을 물레방아를 통해 곡식 찧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으로, 다분히 응징적 표현이다.

제7마당 부처뱅이굿 : 자진모리장단으로 이는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으로, 일에 대한 보람과 수확의 기쁨을 무지개형상으로 변이하였다.

제8마당 싸움굿 : 다드래기장단에 이는 일방적인 싸움굿 형식이나, 여기에는 아주 빠른 장단이 병행된 각기 저항적 메시지가 있다.

제9마당 화해굿/정저굿 : 정저궁이 반주에 맞춰 2쌍진을 나누어 치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고 합진할 때 서로 웃으며 화답한다.

제10마당 판놀이/재주굿 : 기량 또는 판굿 형식으로, 각기 자신의 개인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제11마당 덕석말이굿 : 경상도 특유의 다드래기장단으로 마당에 펴놓았던 멍석을 농한기 때 실경에 걸어두고 내년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었다.

제12마당 큰굿 : 감사굿. 덧배기장단에 마무리 굿판으로 장내를 정리하고, 무사 굿판 연행을 감사하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12마당 굿판이 막을 내린다.

[구성 및 형식]

[내용]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경산중방농악은 중방동 동제와 관련이 있다. 중방동의 동제는 당산제라고 불리며, 천왕을 모신다. 과거 중방동의 동제는 중방 1동, 2동, 3동이 따로 지냈으며, 2동과 3동의 동제는 현재 행해지지 않는다. 1동의 동제는 6·25전쟁 이후에 외지 사람들이 마을로 유입되면서부터 중단되었는데,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간헐적으로 일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다. 이후 2004년 중방농악보존회를 비롯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황]

2004년 창립된 중방농악보존회는 2012년 8월 11일 경산중방농악보존회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회원은 중방동 주민 및 인근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년 회원 81명, 청년 회원 27명으로 총 108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2019년 기준], 중방동주민센터 지하 1층에 사무실과 연습실을 갖추고 있다. 보존회는 경산시의 각종 문화행사에서 공연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의 각종 농악 경연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경산중방농악은 경산 시민이 적극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역 안팎의 시민들에게 전통 농악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1월 18일에 경산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 문헌]

『경산의 산하』(정호완, 1999)

『경산중방농악』(경산중방농악보존회, 2013)

『경산의 생활사와 기억Ⅰ』(경산문화원, 2019)

『경산중방두레농악』(경산중방농악보존회, 2019)

「경산시보 제1185호」(경산시, 2021. 1. 18.)

「은호공원에 중방농악전승기념비 제막」(『경산인터넷뉴스』 2021. 6. 22.)

인터뷰(경산중방농악보존회 회장 이승호, 남, 1955년생, 2019.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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