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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750
한자 金任方
영어공식명칭 Kim Imba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6년 1월 12일연표보기 - 김임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4년 7월~8월 - 김임방 대왕산 죽창의거 참여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김임방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임방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몰년 시기/일시 1991년 3월 11일연표보기 - 김임방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5월 31일 - 항일대왕산죽창의거공적비 건립
출생지 김임방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산양리 29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임방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산양리 29 지도보기
활동지 김임방 활동지 -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지도보기
묘소 김임방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 33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결심대 제1소대원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임방(金任方)[1916~1991]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가계]

김임방은 1916년 1월 12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산양리 29번지[지금의 경산시 남산면 산양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재홍(金在洪)이며, 어머니는 김청래(金淸來)이다. 김임방은 의거 이전까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활동 사항]

김임방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반발한 대왕산 죽창의거에 참여하였다. 대왕산 죽창의거남산면 일원의 청년들을 규합하여 1944년 7월 5일, 7월 8일, 7월 15일 세 차례 회합을 통해 계획되었다. 김임방은 7월 8일 열린 2차 회합에 송내리(松內里)김위도(金渭道), 남곡리(南谷里)의 최외문(崔外文) 등과 함께 산양리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리고 7월 15일 산양리최순한(崔順瀚)과 함께 남산면 원당보(元堂堡)에서 열린 3차 회합에 참여하였다. 이로써 김임방은 일제에 저항할 29명의 청년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7월 26일 새벽 김임방남산면 사월·산양·송내·남곡리에서 모인 청년들과 함께 저항지로 선택한 대왕산에 올랐다. 박재달·박재천·김인봉(金仁鳳) 등 3인은 산에 오르지 않고 마을에 남아 정보 연락을 담당하기로 했다. 대왕산에 오른 청년들은 결심대를 조직했는데, 김임방은 제1소대장 성상룡(成相龍) 휘하의 제1소대원으로 편제되었다. 대왕산에 자리 잡은 결심대는 7월 27일부터 지속된 일경들의 회유를 물리쳤으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경들의 공격을 투석전으로 방어하였다. 나아가 남산면주재소를 공격하여 주재소를 파괴하고 주임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식량 공급이 차단되고 어려워지자, 버티지 못한 결심대원은 8월 9일 하산을 하게 되었다. 하산 후 김임방 등은 각기 마을에서 은신하였지만, 8월 10~13일 사이에 다른 대원들과 함께 모두 체포되었다. 김임방과 결심대 대원들은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보안법위반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송치되었다. 1944년 10월 4~5일경 대구형무소로 다시 이송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옥고를 치르던 중 해방을 맞이하여, 1945년 8월 17일 소송 취하로 석방되었다.

[묘소]

김임방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 33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임방은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995년 5월 31일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에 항일대왕산죽창의거공적비(抗日大王山竹槍義擧功績碑)를 건립하여 일제에 항거한 것을 기념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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