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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02
한자 地乘慶山郡河陽縣慈仁縣地圖
영어공식명칭 『Jiseung(Atlas of Korea)』「Gyeongsan-hyun·Hayang-hyun·Jain-hyun Map」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도
발급자 비변사

[정의]

조선 후기 제작된 『지승』에 수록된 경산군·하양현·자인현의 지도.

[개설]

『지승(地乘)』은 조선 후기 전국 군현과 관방처(關防處)를 그린 회화식 지도집으로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지도는 『경주도회(慶州都會)』, 『안동도회(安東都會)』, 『호서지도(湖西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與地圖)』와 제작 기법과 형태가 유사하기 때문에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된다. 경산군·하양현·자인현 지도는 제3책인 영남 편에 실려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지승』은 조선 후기 비변사(備邊司)가 지방행정 실무 파악과 효율을 위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확실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몇 개의 군현 명칭의 개정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1770~178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

『지승』은 채색 필사본 회화 지도이며 세로 27㎝, 가로 19㎝이다.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조선 시대 경산은 경산군·하양현·자인현으로 구성되었기에, 『지승』에서도 이들 고을을 각각의 지도로 그렸다.

「경산군지도」는 남쪽이 위로 가게 그려졌다. 읍치는 장방형의 범례인 성곽 안에 위치해 있고 읍성 안에 객사와 아사(衙舍), 대동(大同), 사창(司倉)의 관청 건물이 우진각 지붕의 회화로 자리해 있다. 연못은 두 곳을 표시했으며 옥(獄)도 원형의 범례로 성안에 나타냈다. 성문은 남문과 동문을 회화로 그렸고 서문은 전 현감인 이발(李渤)이 설치한 진옥루(鎭玉樓)라는 누정이 있기 때문에 2층 누각의 회화로 표현했다. 향교는 『여지도(輿地圖)』의 「경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적색 바탕의 성곽 범례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남문과 동문은 있으나 서문과 북문은 보이지 않는다. 봉대(烽臺)는 산 능성 위에 적색 바탕의 방형(方形) 범례로 표시한 반면에 사직단(社稷壇)과 성황단(城隍壇)은 글씨로만 적혀있다. 사찰인 경흥사(慶興寺), 쌍계사(雙溪寺), 안흥사(安興寺)와 고산서원(孤山書院)도 우진각 지붕 모양의 범례로 표현했다. 행정 구역인 면은 분홍색 바탕의 적색 테두리를 한 범례로 나타냈는데 읍내면, 남면, 북면, 동면, 서면이 각자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도로는 적색 실선으로 그렸는데 남문과 동문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산맥은 전형적인 산수화로 표현했는데 남쪽은 마암산(馬岩山)과 송정현(松亭峴)이 밀양과 청도에 접하고 있다. 북쪽은 금호강(琴湖江)이 대구와 경계를 나누고 있고 동쪽은 성현산(聖賢山)과 오목천(烏木川)이 자인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서쪽은 눌현(訥峴)과 장현(墻縣)이 대구와 경계를 삼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로 그렸는데 각 산에서 발원하여 금호강으로 흘려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도의 뒤편에는 경산군의 주기(注記)가 기록되어 있다. 목록을 보면 한양까지의 거리와 호구수, 각종 조세와 관련된 내용 및 군영에 소속된 군병의 수가 기록되어 있다. 읍치를 기준으로 인접한 군현과의 거리와 각 면의 방리(方里)가 표기되었다.

「하양현지도」에서 읍치는 동헌과 객사, 아사, 사창, 향교 등의 관청 건물과 금호서원(琴湖書院)이 우진각 형태의 범례로 위치해 있다. 망춘정(望春亭)은 2층 누각으로 되었고 봉대도 적색 바탕의 장방형(長方形) 범례로 산 능선에 표현되었고 사직단은 ‘┏ ’ 모양으로 그려졌다. 도로는 적색 실선으로 표시하여 인접 군현과 이어지고 있다. 행정 구역인 면은 분홍색 바탕의 적색 테두리를 친 범례로 표시했는데 구읍내, 와촌면, 중림면, 악산면, 마양면, 안심면이 각자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신령군의 월경지인 이지현(梨旨縣)이 북쪽 상단에 표시되어 있다. 산줄기는 산수화 형태로 표현했고 남쪽은 금전산(金磚山)이 자인과 경계를 삼고 있으며 북쪽은 무락산(無落山)팔공산과 경계를 나누고 있다. 서쪽은 초례산(醮禮山)과 광명산(光明山)이 대구와 인접하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로 표현했고 각 처에서 발원한 하천이 금호강으로 흘려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도의 뒤편에 하양현의 주기가 있는데 목록을 보면 한양과의 거리, 인구수, 조세와 관련된 내용 및 군영에 속한 군인의 총수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면의 방리가 수록되었다.

「자인현지도」에서 읍치의 구성은 객사, 아사, 창(倉), 향교로 되어 있고 모두 우진각 지붕의 범례로 표현되었다. 누정이었던 낙산루(樂山樓)는 2층으로 그렸다. 사찰인 반룡사(盤龍寺), 신림사(新林寺)와 회재관란서원(晦齋觀瀾書院)은 우진각 지붕의 회화로 표시되었으나 서렴(徐濂)의 정려문(旌閭門)과 설총(薛聰)의 탄생지는 글씨로만 나타냈다. 행정 구역인 면은 특별한 범례 없이 글씨로만 표시했고 도로는 적색의 실선으로 그려 각 지역과 연결되었다. 산맥은 산수화 형태로 그려졌고 남쪽은 삼성산(三聖山)이 청도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백월산(白月山)이 영천과 경계를 나누고 있다. 동쪽은 구룡산(九龍山)이 밀양과 인접하고 서쪽은 현성산(賢聖山)이 경산과 경계를 삼고 있다. 지도의 뒷장에는 자인현의 주기가 있는데 한양과의 거리, 현에 거주하고 있는 남녀의 수와 조세 관련 내용들이 수록되었다. 이밖에 군영에 배속된 군인의 수와 성곽의 유무 및 소속 면의 방리가 기록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승』 「경산군·하양현·자인현 지도」 는 18세기 후반 경산 지역의 사회·경제·군사상의 변화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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