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479
한자 初開寺 薛聰 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Tombstone for Seol Chong in Chogaesa Temple
이칭/별칭 설총 신도비,초개사 신도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유곡길 230[유곡동 27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3년연표보기 - 초개사 설총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초개사 설총 신도비 - 경상북도 경산시 유곡길 230[유곡동 279]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관련 인물 설총
재질 석재
크기(높이,너비,두께) 18㎝[비석 받침 높이 ]|68㎝[비석 받침 너비]|88㎝[비석 받침 두께]|127㎝[비신 높이]|45㎝[비신 너비]|16㎝[비신 두께]|43㎝[개석 높이 ]|78㎝[개석 너비]|53㎝[개석 두께]
소유자 초개사
관리자 초개사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유곡동 초개사에 있는 설총의 행적을 기록한 일제 강점기 비.

[개설]

초개사 설총 신도비는 통일 신라 시대 유학자 설총(薛聰)을 기리기 위해 1913년 세운 신도비이다. 설총의 자는 총지(聰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 어머니는 요석공주(瑤石公主)이다. 6두품 출신의 유학자로, 우리말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고 전한다. 1022년(현종 13) 1월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신도비가 있는 초개사(初開寺) 자리가 원효의 생가이자 설총이 태어난 집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경산 지역이 설총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설총에 대한 추숭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건립 경위]

초개사 설총 신도비는 1913년 가을 경산 지역 유림들이 설총 탄생지로 알려진 초개사에 건립하였다. 비문은 장승택(張升澤)이 짓고 배동호(裵東鎬)가 썼다. 비문에 의하면, 고을 선비 김진홍(金珍泓)·최병일(崔秉溢)·김경인(金㯳寅) 등이 신도비 건립 계획을 세웠다고 하며, 안동욱(安東煜)·김경호(金㯳浩)는 고을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장승택에게 비명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한편, 설총을 제향한 도동서원(道東書院)[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하대3길 13-6]에도 설총의 신도비인 ‘홍유후설선생신도비(弘儒侯薛先生神道碑)’가 있다. 1925년 3월에 건립되었는데, “글은 옛날 비명을 사용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옛날 비명은 초개사 설총 신도비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데, 세부적으로 글자의 차이가 있으며 건립자 또한 다르다.

[위치]

초개사 설총 신도비초개사 경내 극락보전(極樂寶殿) 앞쪽 우측에 있다.

[형태]

초개사 설총 신도비의 비석 받침 크기는 높이 18㎝, 너비 68㎝, 두께 88㎝, 비신 크기는 높이 127㎝, 너비 45㎝, 두께 16㎝, 개석 크기는 높이 43㎝, 너비 78㎝, 두께 53㎝이다. 후면에 있는 비문 아래에 태극 무늬가 음각되어 있다.

[금석문]

초개사 설총 신도비의 비신 전면 중앙에는 제액(題額)인 ‘홍유후 설선생 신도비(弘儒侯薛先生神道碑)’, 우측면에는 ‘단유사 □□수 정진룡 감역 정재진 우광희 사화 김은범 김태식 윤세호(壇有司 □□洙 鄭鎭龍 監役 鄭在鎭 禹匡熙 司貨 金銀範 金泰植 尹世浩)’가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후학 옥산 장승택 근찬 □□ 배동호 근서(後學 玉山 張升澤 謹撰 □□ 裵東鎬 謹書)’라고 새겨져 있으며, 뒤이어 신도비 건립 경위와 설총의 행적을 새겨 놓았다.

[현황]

초개사 설총 신도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신도비 앞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석탑 부재와 연화 대석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초개사 설총 신도비는 근대 이후 경산 지역 유림들의 설총 인식과 추숭 의식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