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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039
한자 改新敎
영어공식명칭 Protestantism
이칭/별칭 프로테스탄트,신교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진성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설]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의미하는 말로, 구교(舊敎) 가톨릭과 달리하여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활동은 1884년(고종 21) 알렌(Horace Newton Allen) 선교사가 입국한 이후 정식으로 선교 사업을 시작하며 이루어졌다. 1887년 장로교의 새문안교회가 설립되었고, 같은 해 10월 감리교의 정동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이후 부산·대구·평양·의주 등 전국 각지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각 교회는 선교 외에 교육·의료·사회 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서양인 선교사는 당시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받자, 자주 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 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협조하였는데, 1919년 3·1운동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제암리 학살 사건과 같은 만행을 외국에 알려 여론화하는 등 조선의 실정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경산 지역 교회의 설립]

대구·경북 지역의 개신교는 베어드(William M.Baird) 선교사의 복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 이름은 배위량(裵偉良)이다. 배위량 선교사가 쓴 일기에 따르면, 배위량은 1893년 4월 22일 토요일 오후 1시경 대구 지역에 도착하였다. 배위량의 대구·경북 지역 선교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아 알 수 없다.

배위량 선교사에 이어 대구 지역에 부임한 선교사는 아담스(James Edward Adams)이다. 한국 이름은 안의와(安義窩)이며 대구·경북 지역 교회의 개척자로, 경산교회의 제1대 당회장이다. 1897년 대구 지역으로 부임해 온 안의와 선교사는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대구제일교회를 중심으로 대구·경북 지역에 개신교 교세가 점차 확장되었는데, 몇몇 신도들이 교통과 불순한 일기 등으로 활동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경산군 고사면 매호동에 있던 김근명의 집에서 남녀 교인 십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후에 사월교회[최만수 목사]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사월교회로부터 분립한 봉회교회[진량제일교회 전신], 금곡교회, 경산교회 등이 설립되면서 경산 지역 내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경산 지역의 교회는 1916년 설립된 경북노회에 속해 있었다.

[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 신도들의 항일 투쟁]

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의 개신교 신도들은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용성면 출신의 백남채(白南埰), 자인면 출신의 배은희(裵恩希), 남산면 출생의 김용규(金用圭) 등이 있다.

한편, 대한기독교장로회 측은 1938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강제로 신사참배를 수용하였으나, 경산 지역의 교회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산의 14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산의 14인 사건은 1943년 6월 18일 일제 경찰이 당시 봉회교회의 장로 김종철(金鍾徹)의 집을 수색하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평사교회, 상림교회, 봉회교회는 강만조(康萬祚) 전도사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김종철의 집에서 강만조 전도사가 출애굽기 20장을 본문으로 하여 ‘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자’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2차 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며 머지않아 한국도 독립이 된다’는 요지의 설교 메모장이 발견되었다. 일제 경찰은 이를 빌미로 평사교회, 상림교회, 봉회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평사교회에서는 김종호(金鍾鎬), 현준이(玄俊伊), 조달용(曺達用), 유한곤(兪漢坤), 김선암(金先岩)[이명 김선수(金善壽)] 등이, 상림교회에서는 현용주(玄龍珠)[이명 현상유(玄相裕)], 현영조(玄永祚)[이명 현종후(玄鐘厚)], 김종만(金鍾萬), 이종호(李鍾昊) 등이, 봉회교회에서는 김종철, 안치준(安致準), 안치대(安致大), 손우헌(孫佑憲), 강만조 등이 체포되었다.

[경청노회]

1962년 경산 지역의 교회가 어느 정도 교세를 갖추자, 경북노회와의 거리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같은 해 열린 경북노회 제47회 총회에서 분립 허락을 받아, 10월 22일 압량제일교회[현 은혜로교회]에서 목사 12명, 장로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청노회가 창립되었다.

경청노회 초대 회장 안중섭 목사를 중심으로, 부노회장 김영진 목사, 서기 유도일 목사, 부서기 최재학 장로, 회록서기 김영환 목사, 부회록서기 김용필 장로, 회계 조홍열 장로, 부회계 채도기 장로가 선출되었고, 창립 노회에서 경산부, 경산북부, 자인부, 청도동부, 청도서부 5개 시찰이 조직되었다. 또한, 1962년 12월 20일에 열린 제1차 임시회 때에는 압량제일교회 교회당에서 경청보통성경학교를 설립 및 개교하였고, 1963년 3월에 열린 제2회 정기노회에서는 경청성경학교를 개교하는 등 평신도들의 신앙 활동과 체계적인 성경 공부를 위해 노력하였다.

1965년 경산동부, 경산남부, 경산북부, 청도동부, 청도서부로 시찰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0년 경산남부, 경산서부 시찰을 경산남부, 경산서부, 경산중부 시찰로 분립하여 6개 시찰에서 7개 시찰로 시찰 구역을 재조정하였고, 2007년 경산서 시찰을 시지 시찰로 변경하였다.

경청노회는 총회가 예장 통합 측과 분열이 있고 난 뒤 세워진 노회로, 현재까지 큰 어려움 없이 경산 지역의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2020년 기준 경청노회에는 총 7개의 시찰[경산중부, 경산동부, 시지, 경산남부, 경산북부, 청도동부, 청도서부]이 있으며 소속된 교회는 137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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