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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007
한자 鬼神-名犬慶山-
영어공식명칭 A Sapsaree-Dog that Drive Away Evil Spirits and Bring Blessings
이칭/별칭 삽사리
분야 지리/동식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삽살개공원길 37[박사리 산21-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3월 10일 - 경산의 삽살개 천연기념물 제368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한국삽살개보존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한국삽살개재단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삽사리테마파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 경산의삽살개육종연구소 설립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의 우리나라 토종개 ‘경산의 삽살개’ 이야기.

[개설]

삽살개는 주로 영남 지방에서 사육되어온 우리나라의 고유 견종이다. 우리 조상들은 삽살개를 ‘귀신과 액운을 쫓는 개’라고 하여 곁에 두어 길렀고, 이 때문에 삽살개는 가사(歌詞)나 민담,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오랜 시간 우리 민족과 함께 생활한 삽살개는 일제 강점기 도축의 대상이 되어 멸종 위기에 몰리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광복 후 경북대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삽살개 연구가 시작되어 하성진·하지홍 부자의 노력 끝에 삽살개는 멸종 위기를 벗어났고, 1992년 3월 10일 천연기념물 제368호 ‘경산의 삽살개’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귀신과 액운을 쫓는 삽살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삽살개를 귀신 쫓는 개로 인식하였다. 삽이란 ‘없앤다’ 또는 ‘쫓는다’라는 뜻이고, 살이란 ‘귀신’ 또는 ‘액운’을 의미한다. 삽살개라는 말 자체가 바로 귀신과 액운 쫓는 개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삽살개를 곁에 두고 함께 하였다.

삽살개가 언제부터 우리 민족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삽살개는 신라 시대 왕실에서 기르던 개로 신라가 멸망하면서 민가로 전파되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대중적인 개가 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증명할 문헌적 자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신라 고승 김교각이 삽살개 선청이를 데리고 당에서 고행한 이야기나 영남지방에 전승되는 김유신 장군의 군견 삽살개 이야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삽살개가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삽살개는 고려·조선 시대 삽살가히, 낙사구(絡絲狗), 방(尨), 방(厖)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유천우(兪千遇)[1209~1276]의 ‘원수 김방경이 탐라를 쳐서 평정함을 축하하며[賀元帥金公方慶攻下耽羅]’를 보면 ‘남쪽에 모인 삽살개 떼들이 하늘을 보고 짖으려 하네[南聚群尨欲吠天]’라는 구절이나 조선 시대 최세진(崔世珍)[1468~1542]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 ‘犬 가히견 俗呼 삽살가히 曰絡絲狗’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유희(柳僖)[1773~1837]의 『물명고(物名考)』에도 수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그린 삽살개 그림 여러 점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어유봉의 8폭 화조영모 병풍을 보면 삽살개의 긴 털을 세필로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 한 폭이 있다. 김두량(金斗樑)[1696~1763]의 1743년 작 「방구도(厖狗圖)」에도 삽살개의 용감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8폭 영모병충에도 오동나무 아래에서 짖고 있는 삽살개 그림이 있다. 삽살개는 집안의 액운을 막는다고 하여 민화에 소재로 활용되었다.

문학 작품에도 삽살개가 등장한다. 『춘향전』을 보면 계화 밑에서 이도령을 보고 컹컹 짖으며 새신랑이 될 이도령을 반기를 개가 바로 삽살개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 삽살개는 청삽살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문소설 『숙향전(淑香傳)』에도 청삽살개와 황삽살개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 밖에 전승 민요나 각종 민담에도 삽살개가 등장한다.

전통시대 시, 회화, 소설, 민담 등에 삽살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선조들과 깊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삽살개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의 사랑스러운 토종개이다.

[삽살개 눈은 어디에 있나?]

삽살개는 몸 전체가 긴 털로 덮여 있어 답답한 느낌과 해학적인 느낌을 동시에 준다. 특히 머리 부분의 털이 길어 눈을 덮고 있어 외관상 긴 혀와 코만 보인다. 삽살개의 털은 장모종의 이중 털로 겉털은 길고 두껍고, 속털은 짧고 부드러우며 조밀한 편이다. 형태는 곧은 털이거나 반곱슬 또는 곱슬 털이다. 황삽사리의 털은 연황색[light yellow], 진황색[deep yellow], 흑황색[dark yellow] 또는 금황색[golden yellow] 등이고, 청삽사리의 털은 흑갈색[black and tan, 사지황색], 흑색[all black] 또는 청흑색[blue black]이다. 또 백색, 초코색, 바둑이색이 있을 수 있다.

삽살개의 머리는 큰 편이다. 긴 털로 인해 단두종처럼 보이나 장두종이며, 콧등우묵은 깊고 긴 털이 덮고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머리의 털이 길어서 첫인상이 둥글게 느껴진다. 눈의 모양은 적당히 크고 둥근 형태를 띤다. 속눈썹이 길게 발달되어 있다. 색깔은 연갈색, 갈색, 진갈색이거나 모색에 따라 옥색을 띠기도 한다. 털이 길어 눈을 관찰하기 어렵다.

귀는 머리에 비해 작은 편이나 다른 견종에 비해서는 크다. 옆으로 누워 입언저리까지 드리워져 있다. 귀 역시 긴 털로 가려져 있다. 코는 흑색이며, 비경(鼻鏡)은 큰 편인데, 까맣고 윤기가 적당히 흐른다. 모색이 초코색인 경우 코 역시 초코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입은 짧은 편이다. 윗입술이 약간 깊이가 있어 아랫입술을 덮어서 싸고 입술 틈새가 쳐지지 않으며 윤곽이 명확하여야 한다. 이빨은 희고 튼튼하고 송곳니가 발달되어 있으며 교합 형태는 정상 교합이어야 한다. 목은 두텁고 힘이 있다. 털이 길어서 목이 짧은 느낌을 준다. 경우에 따라서 사자 갈기를 닮은 경우도 있다.

몸은 등이 곧바르고 앞가슴이 발달되어 있다. 가슴은 적당히 넓고 둥글어야 한다. 털이 길어 몸통이 두껍게 느껴지나 실제는 날렵한 느낌이다. 앞다리는 굵고 곧다. 앞 발목은 짧고 약간의 각도를 가지고 있어 반듯하게 서면 앞발은 지면과 수직을 이룬다. 뒷다리는 옆에서 관찰하면 비절 각도는 셰퍼드견 보다 약간 얕은 정도로 각을 이루며 뒤에서 보면 바른 자세로 딛고 있다.

발가락은 고양이 발가락처럼 꽉 쥔 형태로 발달되어 있고, 발바닥은 두텁고 단단하게 발달되어 지면이 불량한 조건에서도 잘 걸을 수 있다. 꼬리는 등을 따라 말려진 말린꼬리, 등을 따라 곧바로 서있는 선꼬리[장대꼬리], 낚싯바늘처럼 끝이 구부러진 모양의 낚시꼬리 등의 형태를 보인다. 굵고 적당히 긴 꼬리를 가진다.

삽살개는 털이 길어서 움직임이 둔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순발력과 민첩성이 발달되어 있다. 걸음걸이는 앞발은 부드럽고 경쾌하게 뻗으며 뒷발은 그 족적을 따르고 속보 시에는 기민하게 앞다리와 뒷다리를 교차하며 매우 빠르게 전진한다. 수캐의 크기는 평균 50~60㎝, 22~30㎏이고, 암캐의 크기는 평균 48~56㎝, 18~26㎏이다.

[우리는 삽살개를 그림으로만 볼 뻔했다]

선조들의 사랑을 받던 삽살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를 맞이한다. 1930년대 초 일본에서는 토착견에 대한 연구와 보존 열기가 고조되었다. 아끼다견, 기주견, 시바견, 북해도견 등 일본 토착견 보존회를 조직하고, 토착 견종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국가적인 보호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 정책을 표방하면서 일본의 토착견을 닮은 조선의 개를 찾았다. 그 결과 1938년 외형적으로 일본 토착견과 비슷한 ‘진도의 개’가 조선을 대표하는 개가 되었다. 일본은 진돗개를 제외한 우리의 토종개를 도살하며 토종개 박멸 정책을 펼쳤다.

그 하나로 군대의 방한복과 방한모를 만들기 위해 조선원피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조선총독부령으로 「조선 내 개자국 판매 제한령」을 내리고 조선원피주식회사로 하여금 견피를 독점 매입하게 했다. 당시 견피의 크기와 질에 따라 매당 74전에서 2원 28전[5등급 분류]까지 주도록 했다.

견피 수집이 국책이 되면서 일제는 등록견 이외의 개는 모조리 들개란 명목으로 박멸해 적을 때는 1년에 10만 매, 많을 때는 50만 매까지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삽살개를 비롯한 우리의 토종개는 도살당했고,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광복 후에도 사정은 좋지 못하였다. 일제가 심어 놓은 ‘한국의 토종개는 진돗개’라는 인식과 광복 후 밀려드는 서양 문물과 한국전쟁의 발발로 삽살개가 설 곳이 점점 줄어 갔다.

[삽살개 연구의 시작]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에 놓인 삽살개는 1960년 경북대학교 교수들에 의해 연구되며 그 맥을 잇게 되었다. 경북대학교 탁연빈·김화식 교수 등이 삽살개 수집과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고, 전국의 선후배 수의사들이 이를 도왔다.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순수 삽살개로 인정되는 52마리의 삽살개가 확인되었으며, 이중 30마리를 수집할 수 있었다.

당시 삽살개 연구자들은 삽살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보호와 육성을 주장하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탁연빈과 김화식의 지도교수이자 후원자였던 하성진이 두 사람의 연구를 인수받아 대구 범어동에 소재한 목장에서 삽살개를 보호 연구하였다.

[대구에서 경산으로, ‘경산의 삽살개’ 탄생]

삽살개 연구와 보존은 하지홍의 등장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하지홍은 삽살개 보존을 위해 힘쓴 하성진 교수의 아들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뿌리혹박테리아의 rRNA 유전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85년부터 경북대학교 유전공학과에 재직하였으며, 현재 한국삽살개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미국에서 귀국한 하지홍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삽살개 연구에 동참하였다. 이때 대구 범어동에 소재하던 대구목장을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읍[현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으로 이전하였다. 당시 삽살개는 8마리 밖에 없었고, 허술한 사육환경으로 어렵게 수집한 삽살개의 맥은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홍은 목장 뜰에 말뚝을 박고 망을 두르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동시에 친지들에 나누어 주었던 삽살개를 찾았다. 하지만 대부분 잡종화되었거나 복날에 잡아먹었고 없다는 실망스러운 말만 들었다. 하지홍은 개 상인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삽살개를 찾았다. 아쉽게도 삽살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도 없었고, 제대로 혈통이 보존된 개도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하지홍이 인수받은 8마리의 개들이 잘 성장하여 1989년경 30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이제는 멸종되지 않겠다.”라는 자신감을 얻은 하지홍은 1989년 6월 문화재관리국에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을 하였다.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 어려움은 많았다. 하성진이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삽살개를 길렀으나 육종해내겠다는 의지가 명확하지 않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보전한 삽살개들에 대한 유전자 지문법과 같은 과학적 검증 과정도 요구되었다. 1990년 9월 과학기술처 지원의 목적기초 연구과제로 삽살개 과제가 채택되어 본격적인 삽살개 연구가 시작되었다. 「고유견 삽사리의 보호 육성에 관한 연구」를 위해 탁연민, 하지홍, 김종봉, 박희천 등 네 명의 연구책임자가 3년간 연구를 진행하였다.

삽살개의 기초를 마련한 3년간의 연구로 1993년 『한국의 토종개』라는 단행본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언론의 관심도 고조되어 1991년 한글날 KBS에서 「삽살개를 아시나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문화관광부 관련 공무원들의 이해와 대중의 공감을 얻어냈다.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서를 낸 지 2년 만인 1991년 11월 문화재위원과 담당 사무관이 사육장을 방문하여 현장 조사를 하였고, 1992년 3월 10일 천연기념물 제368호 ‘경산의 삽살개’가 탄생하였다.

[천연기념물 ‘경산의 삽살개’]

경산의 삽살개는 경산이 원산지인 개다. 199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 한국삽살개보존회 사육시설[경산시 하양읍 대조리]에 있는 삽살개의 혈통 및 표준체형을 갖춘 개를 말한다. 한국삽살개보존회를 2010년 해체하고 한국삽살개재단으로 재정비하면서 현재는 한국삽살개재단[경산시 와촌면 박사리] 사육시설에 있는 개를 말한다. 경산의 삽살개는 삽살개 고유의 혈통과 표준체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관리는 「문화재보호법」 제34조 규정에 의거 한국삽살개재단의 책임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

경산의 삽살개’ 표준체형 및 특성은 다음과 같다. 일반 외모는 적당한 몸집으로 구성된 중형견으로 겉털과 속털로 이루어진 이중 털인 장모종이며, 머리 부분의 털이 특히 길어 눈을 덮고 있어 외관상 긴 혀와 코 부분만 보여야 한다. 전체가 긴 털로 덮여 있어서 답답하고 둔하여 해학적인 느낌을 주고 민첩성과 순발력이 좋아야 한다. 사자 갈기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나타내어야 한다. 성품은 매우 활달하고 침착, 온순하며 충성심이 강하며 싸움에서는 좀처럼 물러섬이 없이 용맹스럽고 인내심이 강해야 한다.

현재 한국삽살개재단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지닌 ‘경산의 삽살개’ 혈통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삽살개보존회에서 한국삽살개재단까지]

1992년 ‘경산의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되자, 이를 보존하고 학술연구 및 우수 혈통개 보호 육성, 국내외 홍보를 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한국삽살개보존회가 설립되었다. 그동안 삽살개 연구를 해오던 경산시 하양읍 대조리에 연구소를 세웠다. 한국삽살개보존회는 경산의 삽살개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동시에 독도지킴이 활동, 체험학습, 동물 사랑학교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컨테이너 4동과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견사가 전부인 연구소에서 학술연구와 삽살개 홍보 및 체험행사를 운영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고, 인력 역시 부족하였다. 2010년 한국삽살개보존회를 해체하고 한국삽살개재단으로 재단장하였다. 15만 4110㎡ 부지에 관리동 1동과 견사 총 16동을 비롯해 저류조와 운동장을 갖춘 삽사리테마파크도 설립하였다.

경산의 삽살개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스코트 ‘살비’로 지정되면서 주변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한국삽살개재단경산의 삽살개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2012년에는 경산의삽살개육종연구소를 건립하고, 경북대학교 수의과학대학과 MOU를 체결하며 학술연구에 더욱 매진하였다.

경산의 삽살개 홍보를 위해 경산 삽살개축제&2012 애견엑스포, ‘생명존중, 동물사랑’ 실천 청소년 영어스피치대회 등을 개최하고, 나아가 문화재청과 함께 ‘문화재가 문화재를 지킨다.’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경산의 삽살개가 문화재지킴이로 활동하였다. 이밖에 한국삽살개보존회에서 진행하던 독도지킴이 활동, 체험학습, 동물 사랑학교 등도 계승하여 현재까지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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