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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민의 종교와 민속과 삶의 동반자 - 광명의 산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015
한자 光明市民-宗敎-民俗-同伴者-光明-山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민속 신앙적 측면에서 본 산]

고대인들은 그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자연적 원천을 신격화하여 숭배했다. 산과 강은 신이 아닌가. 신이 뭐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인가. 인간과 연관 속에서 생성된다. 인간에게 생기를 주고 에너지를 주는 대상, 그것은 곧 신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삶의 지혜로서 작용했다. 자연을 신으로 경외하고 소중히 했다. 산에서 나는 나무 한 그루, 돌 한 조각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환경 운동이 태생적으로 몸에 배어 있었던 셈이다. 누가 애니미즘을 미개하다고 하는가. 인류 문화의 모든 원천은 그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승해야 할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오늘날의 생태 운동이 보다 근원적인 사상적 기반을 취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평등 그리고 서로 소통하고자 했던 인류 문화사의 큰 줄기인 애니미즘부터 알아야 한다.

전통 사회의 민초들은 산에서 사냥을 하고 목축을 하고 열매를 채취하고 약초를 캐고, 밭을 일구어 작물을 재배하고, 목재와 땔감을 얻고, 사람이 죽으면 묘지를 쓰고, 집과 촌락을 만들 때도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고려했으며, 외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산 위에 산성을 짓기도 했다. 또한, 산은 바람을 막아 주고 맑은 공기를 제공하며 세속에 지친 인간에게 생기와 활력을 충전시켜 주며 시원한 계곡과 숲속은 휴식처가 되었다.

이처럼 산은 경제적 혜택은 물론 정신적, 육체적 건강까지 우리에게 제공한다. 산이 주는 정신적, 육체적 생기와 활력은 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기(精氣)로 표현된다. 어느 산 주위에서 태어났다 하면 그 산의 정기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며, 그 산의 정기가 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수호신’처럼 생각한다.

산의 형태와 지세를 보아 남산이다, 여산이다, 누가 산신이 되었다, 어떤 분이 조종으로 내린다, 어떤 줄[도줄, 장군줄 등]이 강하다, 산신의 성격이 어떻다, 무슨 음식을 잘 받는다, 꺼린다[소산, 육산] 등등은 산 기도를 다니는 사람에게 관심거리가 되기도 한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산은 어머니의 품안이요 신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자연 촌락들은 산비탈이나 구릉지에 위치한다. 즉, 산자락을 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산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산신이 무엇을 받고 싫어하는지 그것을 아는 것은 어머니의 기호와 성질을 자식이 아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마을마다 산신제에서 올리는 음식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학에서는 산의 형태가 주변에 사는 사람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집터와 묘지를 택할 때 길지(吉地)를 찾는다. 산을 삶의 터전으로 의지하며 살아 온 우리 민족에게 산은 제사와 기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산을 받들어 국가에서는 국행제(國行祭)를,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개인들도 수시로 산 치성을 올렸다. 안택고사 때도 산신의 몫으로 음식을 올리고, 묏자리를 팔 때나 산에서 큰 나무를 벨 때, 산에 약초를 캐러 갈 때도 산신제를 지냈다. 사찰에서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산신 신앙을 수용하여 산신각을 지어 모시고 있다. 또한 산을 수호신으로 의지하며 간절한 소망을 빌고, 산의 기운을 받기 위해 산 기도를 다닌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민간 신앙에서 산신을 섬기는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에서 혜택을 받으면서 그 자연을 경외하고 숭배함으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와 공존을 추구한다.

이러한 옛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근대로 접어들며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개발 논리에 의해 파괴되어 왔다. 도로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줄기를 함부로 훼손했다. 광명시의 경우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고속도로가 산줄기를 관통하고 아파트 단지가 낮은 야산을 뭉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오늘날의 생태 운동은 옛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자연은 사람 보호 사람은 자연 보호”. 인간은 자식이고 산은 어머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의 산신들이 남성신으로 교체되었지만 고대에는 여성신이 많았다. 산은 어머니에 훨씬 닮아 있다. 계곡의 물줄기는 어머니의 젓줄이고 능선으로 감싸진 비탈은 어머니의 품안이다. 자식과 어머니가 교감을 하듯 그렇게 자연과 소통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 전통 사회의 민초들이다.

안양천목감천의 사이에 있는 광명의 산줄기는 구름산도덕산에서 우뚝 솟았다가 철산동에서 끝을 맺는다. 이렇게 하여 광명 지역은 마치 나뭇잎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산줄기는 뼈대처럼 솟아 골격을 이루고 있다. 만약 광명시에 산과 강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인체로 비유하면 뼈와 피가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산과 강은 중요하고 늘 신격화되면서 숭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시민의 쉼터로 자리한 광명의 산]

광명의 산들은 가학산서독산에서 시작하여 구름산으로 이어져 도덕산의 끝자락인 철산1동에서 끝난다. 도덕산광명동·철산동·하안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83.1m이다. 옛날에 사신(使臣)들이 이 산봉우리에 모여서 도(道)와 덕(德)에 대한 의견을 자주 교환했다고 하여 도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도덕산은 도시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산의 북쪽 산줄기 끝에 흥덕사(興德寺)가 있으며, 북동쪽 산기슭에는 광명시청광명시민회관, 광명시민운동장이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도덕산 서쪽 광명7동 주변에는 도덕산자연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야외음악당,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도덕산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어 시민들의 체육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도덕약수터·도덕산약수터·밤일약수터·하안약수터·우람회약수터·명상의 숲·체력 단련장·만남의 광장·전망대 등이 시설이 있어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광명동하안동 경계에 솟아 있는 높이 198m의 광명산은 광명시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도덕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도덕산광명산을 구분하는 고개가 없어 서로 연이어 있으므로 같은 산으로 볼 수도 있다.

높이 220m의 가학산(駕鶴山)구름산과는 능고개를, 서독산과는 도고내고개를 사이에 두고 솟아 있는 산이다. 가학동·일직동·노온사동·소하동에 걸쳐 있으며, 동쪽으로 오리동계곡이 발달되어 있고 서쪽에는 크게 두 개의 산줄기가 뻗어 있는 광명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높이 180m의 서독산(書讀山)가학산과 안양시 박달동 경계에 솟아 있는 산이다. 옛날 많은 선비들이 이 산에 올라 글을 읽고 과거 급제를 위하여 실력을 갈고 닦은 산이라고 하여 ‘서독산’이라 불렀다. 옛 책에는 서덕산(書德山), 청덕산(靑德山)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광명시의 맨 남쪽에 위치한 서독산의 북쪽에는 290~219고지가 있고, 도고개를 지나 가학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동쪽으로는 안양시의 각종 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남쪽으로는 시흥시의 농촌문화연구원과 안양시 교육원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 237m의 구름산소하동노온사동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일명 운산(雲山)이라고도 한다. 아방리에 소재한 산이라고 해서 아왕봉(阿王峯)이라고 불렀는데, 조선 후기에 구름 속까지 산이 솟아 있다고 해서 ‘구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름산에는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의 무덤인 영회원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구름산은 광명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산림 생태계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애기능저수지 근처의 금촌강씨 선산 위에 있는 천연 약수터를 비롯해 진달래약수터와 구름산약수터 등이 있으며, 구름산 전통 정자와 배드민턴장 등이 있어 시민들이 수시로 올라가서 심신을 다지고 휴식을 취한다.

[광명의 주산으로 자리한 구름산]

향토 문화를 연구할 때 특히 중요시하는 것이 주산이다. 주산 숭배는 그 지역의 향토성을 알려 주는 중요한 코드로서, 곧 주산의 성격이 그 지역 문화의 지역적 색깔을 입히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개 주산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크거나 높은 산으로 지역민들이 숭배하는 산이다. 시군 단위로 들어가도 주산이 있으며, 마을 단위로 들어가도 마을의 주산이 있다. 이 주산을 중심으로 우리의 민속 신앙은 영역화 되어 있다. 주산 중심의 문화 권역도 가능한 것이다. 주산의 지형은 지역 생태 환경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서울의 삼각산, 강원도의 금강산, 경상도의 태백산, 전라도의 지리산, 충청도의 계룡산, 제주도의 한라산, 함경도의 백두산, 황해도의 구월산, 평안도의 묘향산을 명산으로 꼽았다. 이들 산은 곧 그 지역의 주산이기도 하다.

광명시의 주산은 구름산이다. 구름산에서 주민들은 약초를 캐고 땔감을 구했다. 능촌마을 주민들 중 여자들은 구름산에 올라 약초를 캐서 영등포에 나가 팔았으며, 남자들은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구름산의 명당 터는 지역민들의 선산으로 이용된다. 조선 전기부터 구름산 기슭의 명당 터는 이미 이 지역 세거성씨인 금천강씨 선산으로 사용되었다. 그 외 성씨들도 구름산 곳곳에 묏자리를 잡았다. 구름산의 일부 계곡물은 애기능저수지에 담수되었으며, 한동안 농업용수로 이용되다가 근래에는 낚시터로 주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

산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구름산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많은 것을 보듬어 준다. 그래서 주민들도 구름산을 경외하고 받든다. 구름산 주변의 마을 신앙은 구름산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구름산 기슭에 있는 노온사동 능촌의 산제에서는 소머리와 고사떡, 과일, 전, 술, 국수, 청수가 제물로 올라간다. 이것을 보면 구름산 산신이 고기와 술을 받는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산에 따라 고기를 일체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무당들이나 주민들이 산신 기도를 드려도 산에서 고기를 받지 않는 곳에는 고기를 올리지 않지만 구름산에서는 고기를 올려도 되는 것이다. 구름산에는 능촌 외에도 소하2동 영달말에서도 구름산 줄기 도당고개의 도당나무에 제를 지내고 있다. 소하동 가리대마을에서는 산 중턱의 산제당에서 제를 지내며, 구름산도덕산 사이에 있는 하안동 밤일마을에서는 산 중턱 느티나무에서 제를 지낸다. 그 외 광명의 마을 제당들도 산 주변에 위치한다.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것이다.

주민들은 안택고사를 지낼 때도 산신의 몫으로 산시루를 따로 찐다. 노온사동 능촌마을 주민 이재숙은 구름산 산신께 바치기 위해 빻지 않은 통팥을 시루에 쌀가루와 함께 올려 찐다. 떡이 다 되면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시간에 조용히 고사를 지내는데, 우선 질시루는 대청의 성주 앞에 놓고 칠성시루는 장독대에 올린다. 질시루 앞에서 비손을 하고 접시에 떡을 조금씩 담아 방, 부엌, 대문, 터주가리 등 집 안 곳곳에 둔다. 산시루는 마루 끝에 놓고 구름산을 보고 비손한다. 마루에서 산이 잘 보이지 않는 집은 대문 앞으로 나와 산시루를 놓고 비손을 한다. 이 지역 만신들은 굿을 해도 구름산 산신 몫으로 산시루를 올리고 산신거리에서 축원을 한다. 광명의 만신들은 또한 수시로 구름산 계곡이나 약수터에서 치성을 올린다.

오늘날은 주로 무당들이 산 기도를 가지만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주민들은 반 무당이었다. 그들도 조용한 밤에 호롱불 등잔을 밝혀 들고 산으로 올라가 비손을 하고 소지를 올렸다. 지금은 무당만의 전유물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얼마 전까지만 우리 민족에게 보편적이던 전통 신앙이었다. 계층과 지역, 성별을 떠나 우리 민족 모두의 신앙이었다.

전통이란 참으로 유구한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행해지지 않으면 금세 잊히고 아득한 것으로 인식된다. 불과 반세기전만 하더라도 초가집에 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가. 산에 얼마나 의지했던가. 어저께 일도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생소하고 아득히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필자가 캄캄한 밤 초가집 마루 끝에 걸어 두었던 등잔[유리로 사방을 막아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고 그 속에 호롱불을 넣어 둠]을 들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 병원에 간 어머니의 치유를 빌고 소지를 올렸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오늘날 도시의 젊은 세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득한 옛날을 떠올릴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동시대에 행해지는 민속도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것이 인간의 지각이다. 민속이 행해지는 실제의 시간과 그 민속의 체험 공간 안에 있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동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라는 통시적 차이만큼 간격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산간벽지에서 우물물을 길어다 먹는 사람에겐 두레박과 우물이 현실이지만 그것을 체험하고 있지 않는 도회지의 사람에게는 아득한 과거의 사실일 뿐이다. 그래서 전통의 실제와 그것을 실제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느끼는 시간에는 오차가 있다. 결국 자신의 체험과 공간 밖에 있는 민속은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것과 동시대의 현실은 다름을 우리는 민속과 전통을 이해하는 데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실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전통 교육이 필요하다.

광명의 주산인 구름산의 명성에 걸맞게 광명시에서는 1991년부터 매년 10월 5일을 전후하여 ‘구름산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구름산예술제는 광명시의 종합 예술 축제로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광명시지부가 주최하는 문화예술 행사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생명으로서의 산 알기]

근래에 들어 광명 지역에 위치한 산 주변으로 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산자락이 무분별하게 파괴되며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울창한 산림을 기계톱과 중장비로 마구 베어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발의 논리에서 산림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산으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산을 경외할 줄 모르고 몇 평의 택지를 더 확보하려고 산자락을 깎아 낸다면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구의 방대한 산림 훼손은 대기로 오염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산소 공급원을 없애고 있다. 생태 운동, 환경 운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만물을 생명으로 보는 애니미즘적 지혜도 우리의 산을 살리는 소중한 정신문화이다. 산을 생명으로 보자. 어머니로 보자. 그러면 어찌 어머니의 살을 깎을 수 있겠는가. 구름산을 쳐다보며 비손을 하는 저 할머니의 산 사랑이야말로 그런 마음이 아닐까. 산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신제를 지내는 주민들의 지혜에서 우리는 산이 인간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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