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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두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016
이칭/별칭 포엠 콘서트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17[사동 177-3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85년 5월연표보기 - 꼬두메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꼬두메 제 1회 정기공연 개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5년 12월 8일 - 꼬두메 창단 20주년 기념 기념 콘서트 개최
최초 설립지 꼬두메 - 광주광역시
현 소재지 꼬두메 -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17[사동 177-39]지도보기
성격 문화예술 단체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문화 예술 단체.

[개설]

꼬두메는 1985년 5월, 배경희(한보리), 김순곤, 배창희, 장현우, 여균수 등이 중심이 되어 모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수, 언론인, 화가, 연극인, 문학인 등이 함께 하게 되었고 시와 노래가 만나는 '시 하나 노래 하나,' '열린 광장 공연, '대중음악과 국악의 만남' 등 다양한 문화예술의 실험을 진행하였다.

꼬두메 출신의 김순곤은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 작사를 계기로 서울로 진출하였고 「고추잠자리」, 「난 아니야」 등 수많은 노래를 작사하였다. 작곡가로는 「바위섬」으로 알려진 배창희가 있고, 2,000여 곡을 작곡하고 다수의 앨범을 발매한 한보리(배경희)가 있다. 활동회원으로는 배경희, 김순곤, 기현수, 오영묵, 배창희, 여균수, 곽우영, 박건구, 허설, 박양희, 이진진, 정병호, 이인숙, 김근영, 황락천, 오승련, 이송재, 위명운, 정철호, 이중재, 정하나, 박양희, 이미랑, 나의승 등이 있다.

[설립 목적]

꼬두메는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친 사람들이 광주의 정서를 나타내는 문화를 생산하고 보급하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변천]

1985년 5월에 결성된 꼬두메의 연주회는 실내에서의 정기연주회에서 1992년 열린 광장 공연으로 실외 공연으로 확장되었다. 1999년부터 시인의 시에 선율을 입히는 '시 하나 노래 하나'의 모임이 결성되면서 다양한 포엠 콘서트를 열었다. 3년 간 매월 MBC FM과 함께하였고 , 2년 간은 계간으로 공연하였다. 2005년 꼬두메 20주년 기념 콘서트 이후에는 꼬두메라는 단체의 이름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나 포엠 콘서트는 다양한 포맷으로 계속되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88년 제 1집 『새는 빈둥지를 허물고 떠났다』 CD 발간과 제 1회 정기공연이 있었다. 1989년에는 제 2회 정기공연(학생회관)이 있었고 1992년에는 제 5회 정기공연(남도예술회관)과 함께 문화예술회관 앞 원형극장에서 '열린 광장 공연'을 시작하였다. 1994년에는 제 2집 『몽상가의 손목시계』가 출반되었고 제 8회 정기공연(문예회관 소극장)이 있었다. 2001년에는 제 12회 정기공연이 있었고 꼬두메 제 3집 『나는 오늘도 좁은 길을 가고있다』를 출반하였다. 2005년 12월 8일에는 꼬두메 창단 20주년 기념 기념 콘서트(광주 영상예술센터)와 함께 기념음반을 제작하였다.

2005년 이후에는 단체명으로 활동하지 않았고 시 하나 노래 하나 모임이나 개인적인 활동으로 각각 음악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황]

2021년 기준 꼬두메 단원들은 개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해남을 근거지로 '시와풍정담소' 공연을 매월 진행하고 있는 꼬두메 출신 한보리, 오영묵, 박양희, 진진과 해남의 이병채(판소리), 이우정(타악)의 활동이 꼬두메가 전개했던 포엠 콘서트의 의도를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꼬두메는 결성 후, 중앙 중심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광주 지역의 정서를 재현하는 음악문화를 추구하며 활동해왔다. 특히 음악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애호가들을 흡수하고 그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공연의 형태를 확장하고 자신들의 창작노래 대중화와 보급활동을 하면서 광주, 전라남도, 더 나아가 전국의 공연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한 축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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