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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59
한자 旌閭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희태

[정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표창하기 위해 세운 비.

[현황과 특징]

정려비(旌閭碑)는 충효열(忠孝烈)의 정신을 실천한 인물을 표창하는 비이다.

충효동정려비각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부인 흥양이씨, 형 김덕홍(金德弘)[1558~1592], 아우 김덕보(金德譜)[1571~1627] 일문(一門)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1789년(정조 13) 나라에서 마을 앞에 세운 것이다. 김덕령은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해 진해와 고성 등지에서 싸웠다. 부인 흥양이씨는 정유재란 때 담양 추월산에 피신해 있다가 왜군의 추격을 받고 순절하였다. 이에 국가에서는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을 내려 주었다.

정엄 효자비(鄭淹孝子碑)는 정엄(鄭淹)[1528~1580]이 1574년(선조 7)에 어머니 봉양을 위해 나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어머니의 병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뒤 죽었다는 효성에 나라에서 귀감으로 삼고자 1611년(광해군 3)에 내린 효자 정려비이다.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제주양씨 양산숙 일가 6명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1635년(인조 13)에 세운 정려문이다. 양산숙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과 접전하다가 김천일(金千鎰) 의병장과 함께 순절하였다.

고씨삼강문(高氏三綱門)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가족 6인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1844년(헌종 10)에 세운 것이다.

창녕조씨 삼강정려(昌寧曺氏三綱旌閭)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조언수의 충, 손자 조순악과 증손자 조후건의 효, 며느리 문화유씨의 열 등 창녕조씨 일가 4대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정려비는 충효열 행적의 표창을 통하여 유교의 인간상을 확립하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의향의 상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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