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동 동하마을 한산정씨 세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17
한자 細荷洞洞荷-韓山程氏世居地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에 있는 한산 정씨 세거지.

[개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의 취락』[795쪽]에 보면 광주 집성촌의 한 동네로 서창면 세하리가 나온다. 이 항목을 보면 가구수 69집 가운데 30집이 흥성장씨라고 현황을 밝히고 있다. 연혁편에서 40여 년 전에는 설(薛)씨들이 살았으나, 그 후에 한산정씨들이 많이 옮겨 살다가 선조 때 이르러 장(張)씨들이 와서 다른 성씨들은 쇠퇴하고 장씨촌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네 부자도 장대변(張大變)으로 자산이 2만 원에 달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한산정씨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 토성 항목에 광주 향리의 속성 네 성씨 가운데 한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한산은 현재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있던 조선시대 고을 이름이다. 한산정씨 집안은 고려 공민왕 왕비 노국공주가 고려에 시집올 때[1351년] 수종한 정사조(程思祖)[1309~1383]가 고려에 정착하면서 한산공 군봉을 받고 한산고을에 정착하여 득성한 집안이다. 정사조의 아들이 정광(程廣)으로 신도비가 진월동에 있다.

정광은 광산이씨 집에 장가들어 진월동 금당산 기슭에서 살면서 자손을 늘려 일대를 정랑동(程郞洞)이라 불렀다는 구절이 있다. 한때 방하동면[현재의 세하동]에서 살았었는지 방하동면에서 가까운 매월동 화개동네에 지금도 한산정씨들이 살고 있으며, 마륵리에는 30가구나 살아 가장 많은 분포율을 보인다. 마륵과 화개는 옛날에 선도면(船道面) 세동(細洞)이라 부르던 동하(洞荷)동네로 가까운 곳이다.

[연원]

오늘날의 서창동은 행정동으로 1995년 신설한 동 이름이고, 그 안에 1914년에 생긴 세하동을 흡수한 동 이름이다. 물론 세하동은 세동(細洞)과 동하, 창촌(倉村)을 합한 이름이다. 창촌은 그 중심이 서창동에 흡수된 서창나룻터 동네이고, 세동은 임진왜란 때의 명장 김세근(金世斤)[1550~1592] 장군 집안의 김씨들이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사는 김씨 집성촌이다. 세하동 2구에 속하는 동하마을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1990년 통계 홍성장씨가 87집 가운데 21집이 사는 장씨촌이라 할 수 있다.

동하마을 연못 가운데 만귀정(晩歸亭)이란 문화재자료가 있다. 만귀정동하마을에 정착한 장창우(張昌雨)[1704~1774]가 강학을 위하여 세웠던 전각을 후손들이 1934년 중창한 것이다. 송정읍장을 지낸 장안섭(張安燮)이 지었다는 묵암정사도 있다. 전통문화마을 가꾸기 사업이 활발하다. 흥성은 신라 통일 뒤 오늘날의 고창에 흡수된 고을 이름으로 고려 충선왕 때 흥덕으로 고쳐 불러 조선조 말에 고창군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흥덕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흥덕 본관을 쓰는 사람이 많다. 광주의 경우 흥덕장씨가 3,715명인데 견주어 흥성장씨는 그 절반 가량인 1,882명[2015년 통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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