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17
한자 眞月洞眞堤-堂山祭
이칭/별칭 진월동 진제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 중앙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모시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진월동 진제마을 당산제는 할머니당산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시는 마을 제의이다. 질병 퇴치와 관련된 유래담이 전하고 있으며, 몇 번의 신체 변화 과정을 거쳐 현재는 수령 150년의 느티나무를 할머니당산으로 모시고 있다. 진제마을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로 도시화와 각종 건설에 의해 마을 변화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당산제를 유지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진제마을제석산(150m) 남서쪽 자락에 있다. 마을 앞으로 광주광역시-화순간 제2순환도로가 지나가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형성된 봉선동진월동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지형이나 생업의 변천이 심한 곳이다. 마을 앞 방죽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과거에는 '진개골'이라고 불렸다. 당산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래담이 전하고 있다. 옛날 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어가는데 치료를 할 수가 없자 나무를 심어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뒤에 질병이 마을에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중단된 시기도 있었으나 마을에 우환이 있자 다시 재개하여 모시고 있다. 현재 진제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마을회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진제마을의 당산은 수령 150여 년 된 느니타무로 할머니당산이라고 불린다. 1960년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처음 당산제가 시작될 때 모셨던 당산나무는 고사되어 사라지고, 그 곳에 흙으로 된 무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무덤은 수호신으로 불리었고, 1960년대에는 이곳에서 당산제가 진행되었다. 현재의 당산나무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이 무덤은 이후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지고, 파헤친 사람은 할머니당산의 노여움을 사서 죽었다고 전한다. 이후 무덤 옆 입석을 마을회관 앞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당산제를 모셔왔으나, 1992년에 현재의 당산목으로 신체를 바꿔 당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절차]

1990년대 진월동 진제마을 당산제는 제일(祭日) 일주일 전에 화주 1명, 헌관 3명, 축관 1명, 집사 1명을 선정하였다. 제관(祭官)들은 초상집에 가지 않은 사람 중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맞는 사람으로 정한다. 이때 나이가 아홉수인 사람은 제외한다. 현재는 약소화되어 헌관 3명과 축관만을 선정하며 예전의 금기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쌀이나 돈을 걷어 제비(祭費)를 충당하거나 삼일굿이라고 하여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하여 마련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마을기금으로만 충당하고 있다. 정월 열나흗날 오전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시장에 가서 제물(祭物)을 구입하는데, 돼지머리, 대추, 곶감, 과일, 떡, 술 등을 제물로 준비한다. 과거 화주를 선정하였을 때는 제물을 화주집에서 장만하였으나, 요즘은 경로당에서 함께 준비한다. 제일 아침에는 금줄과 금토를 당산 주변과 화주집 앞, 당산으로 가는 길에 쳐 놓는다. 저녁 8시가 되면 마을 골목을 다니며 굿을 쳐서 제를 알린다. 9시 무렵에 제물을 들고 당산으로 가서 진설하고 '분향→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사신→소지→음복→헌식' 순으로 진행한다. 요즘에 들어서는 저녁 6시에 시행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여성들과 아이들은 참여하지 못하였으나, 요즘은 원하는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제가 끝나면 날이 새도록 굿을 치면서 마을을 돌았으나 현재는 생략하고 있다.

[부대 행사]

과거에는 당산제를 모신 후 사흘째 되는 날부터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궁을 쳤다. 이때 돈이나 곡식을 걷어 마을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2월 초하루에는 마을회의를 열어 당산제를 결산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였다.

[현황]

진월동 진제마을 당산제는 도시화와 각종 건설에 의해 마을 변화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당산제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간단히 상만 올리는 것으로 갈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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