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리의 괴밥사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552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염승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1월 9일 - 오산리의 괴밥사리」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마을 박종도 이야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오산리의 괴밥사리」 『광주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오산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지도보기
채록지 진곡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인물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박상|쇠부리
모티프 유형 동물|지명유래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오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괴밥사리눌재 박상에 관한 이야기.

[개설]

「오산리의 괴밥사리」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이 겪었던 일화와 괴[고양이]밥사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광산구 진곡마을에 거주하는 박종도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진천사에서 오산리와 안청리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 들이 있는데, 고양이를 먹여 살리는 논이라 하여 괴밥사리라 부른다. 이곳에는 충주박씨 눌재 박상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나주 읍내에서는 우부리(牛夫里)['쇠부리'라고도 한다.]란 사람이 있었는데, 우부리 딸이 연산군의 애첩이 되었다. 우부리는 연산군의 장인이 된 이후, 나주목사가 우부리를 의식하여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갖은 행패를 부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나주목사로 부임하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눌재 박상이 나주목사를 자청하여 부임하자마자 우부리를 잡아 죽였다.

눌재 박상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담양부사와 순천부사, 나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눌재는 연산군이 재임했던 시기에 진사가 된 것을 시작으로 1505년 전라도사를 지냈는데, 아마 이야기에 언급된 나주목사는 박상이 전라도사로 부임하여 우부리를 처단한 것으로 보인다.

눌재는 임금의 장인을 죽인 죄를 고하고, 자수를 하기 위해 서울로 출발하였는데, 서울과 목포를 잇는 길에 당도하자 고양이가 눌재의 옷자락을 자꾸만 물고 잡아당겼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눌재가 고양이에게 "너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고양이는 그제서야 눌재를 놓아 주었다. 눌재가 고양이를 따라가자, 고양이는 진천사라는 절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그 고양이는 진천사에서 기르던 고양이었다. 눌재는 그곳에서 하루이틀을 묵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우부리를 죽인 죄목으로 눌재에게 사약을 보냈고, 금부도사가 사약을 가지고 나주로 내려오는 사이에 눌재진천사에 있어서 길이 엇갈렸다. 또한, 그 사이에 반정(反正)이 일어나 임금이 바뀌었고, 눌재에게 우부리를 죽인 죄를 묻지 않았다.

고양이가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한 눌재는 그 고양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논 일흔두 마지기를 내놓았다. 그 자리가 오산과 안청 중간에 있는 감밭들이었는데, 그 끝에 있는 괴밥사리라는 곳이 바로 눌재가 내놓은 논이었다. 괴밥사리는 일제강점기 때 경지 정리로 인해 없어졌다. 또한, 충주박씨 집안의 이야기와 『눌재집(訥齋集)』을 보았을 때, 눌재가 머물렀던 곳은 입암산(笠岩山)에 있던 절이었는데 진천사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동물에 의한 지명유래'이다. 연산군의 장인으로 패악을 저지른 우부리를 눌재 박상이 죽였는데, 이는 임금의 친족을 죽인 중죄였다. 눌재 또한 그 죄를 실감하여 서울로 자수를 하러 갔지만, 도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후 눌재는 자신을 구해준 고양이에게 보은하기 위해 고양이를 먹여 살릴 수 있도록 논을 선물하였고, 논 이름도 괴밥사리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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