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무등산」[송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56
한자 登無等山-宋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93년 - 송순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82년 - 송순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520년연표보기 - 송순이 「등무등산」을 지음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송순

[정의]

조선 전기 문신인 송순이 1520년에 전라도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한 뒤 지어서 박우에게 보여준 한시.

[개설]

「등무등산(登無等山)」을 지은 송순(宋純)[1493~1582]은 조선 전기 때 문신으로,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수초(遂初), 호는 면앙정(俛仰亭)이다. 1519년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에 제수되었다. 1533년에 김안로(金安老)가 정권을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俛仰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된 뒤 홍문관부응교에 제수된 것을 시작으로 홍문관부제학, 충청도어사 등을 지냈으나, 1542년 윤원형(尹元衡) 일파에 의해 전라도관찰사에 좌천되었다. 1550년에 대사헌,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진복창(陳福昌)과 이기(李芑) 등에 의해 사론(邪論)을 편다는 이유로 충청도 서천으로 귀양 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나 선산도호부사, 한성부좌윤, 의정부우참찬 등을 지냈다. 송순은 강호가도(江湖歌道)를 노래한 시가 많으며, 「면앙정가」를 비롯한 국문시가 9수와 시조 20여 수 등을 남겨 조선 시가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 문집인 『면앙집(俛仰集)』이 있다.

「등무등산」은 『면앙집』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경진중추, 등무등산, 구호록정석헌선생(庚辰仲秋, 登無等山, 口號錄呈石軒先生)[경진년 가을 무등산에 올라 입으로 읊조린 것을 기록하여 석헌 선생에게 드리다.]"라고 기록하였는데, 경진년은 1520년이며, 석헌 선생은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아우인 박우(朴祐)이다. 제목 뒤에 “박공우자창방 눌재선생지제 후개호육봉(朴公祐字昌邦 訥齋先生之弟 後改號六峯)[박공 우(祐)로 자는 창방(昌邦)이며 눌재 선생의 아우로 후에 육봉(六峯)으로 호를 고쳤다]”이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첫 번째 수 뒤에는 “시사림소패(時士林所敗)[이때 사림이 패한 바였다]”라는 소주가 붙어 있는데, 이는 작시 연도가 1520년인 것으로 보아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성]

「등무등산」은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로, 모두 2수이다.

[내용]

등무등산(登無等山)[무등산에 올라]

야광지천원(野曠知天遠)[들판 넓으니 하늘 먼 것 알겠고]/ 임소회기한(林疏會氣寒)[숲이 성그니 날이 차갑구나]/ 보청련회백(保靑憐檜柏)[푸름 간직한 송백 어여쁘나]/ 피절석지란(柀折惜芝蘭)[지초와 난초 꺾여 있으니 아까워라]/ 자작배수만(自酌杯雖滿)[홀로 든 술잔 비록 가득 찼으나]/ 잉수의불관(仍愁意不寬)[쌓인 시름은 없어지지 않네]/ 일추어사서(一秋於四序)[사계절에 한 번인 가을인데]/ 호독탈인환(胡獨奪人歡)[어찌 홀로 기쁨을 가져가는가]

방활추산로(放闊秋山路)[넓게 트인 가을 산길을]/ 피회임사치(披懷任四馳)[가슴 열고 사방으로 달렸네]/ 곡허전뢰원(谷虛傳籟遠)[빈 골짜기 바람 소리 멀리 전하고]/ 천광송운지(天曠送雲遲)[광활한 하늘에 구름 더디 가네]/ 명월감유영(明月堪留影)[밝은 달그림자 머무르니]/ 서방전기사(西方轉起思)[서쪽으로 갈수록 다시 생각나네]/ 상표여차익(商飆如借翼)[가을 바람에 날개 빌린다면]/ 과학문황희(跨鶴問黃羲)[학을 타고 복희씨를 찾으리라]

[의의와 평가]

「등무등산」송순 시 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송순박우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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