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규봉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935
한자 瑞石圭峰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고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유산기
작가 권극화

[정의]

조선 전기 때 문신인 권극화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서석규봉기(瑞石圭峰記)」를 지은 권극화의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권극화의 작품이 수록된 책이 고려 후기인 14세기 후반에서 조선 초기인 15세기 중반까지의 산수 유람 관련 시문집인 것을 근거로, 권극화도 역시 같은 시기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서석규봉기」의 제목에서 '서석'은 무등산을 이르는 이칭(異稱)이며, 무등산 관련 유람기 중 비교적 짧은 글에 속한다. 조선 후기에 나이가 들거나 거동이 어려운 사람에게 간접적이나마 산수 유람 체험을 제공하기 위하여 간행한 『와유록(臥遊錄)』에 실려 있다.

[구성]

「서석규봉기」는 먼저 유람 장소의 이름을 밝힌 후 서석대와 규봉, 그리고 규봉에 있는 규봉암의 주변 산세, 모습, 유래 등을 설명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서석규봉기」무등산의 정상인 서석대와 규봉을 묘사한 글이다. 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광주의 진산으로 무등산이라 부른다. 다른 이름으로는 서석산이라고 부른다. 산세가 웅장하여 다른 산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산 동쪽에 암자가 있는데 규봉암이라고 부른다. 그 옆에 상서로운 돌들이 빼곡히 서 있는데, 우러러 서 있는가 하면, 굽어 있기도 하고, 누워 있거나, 일어서 있는 모습이다. 무리를 이룬 것 중 홀로 서 있는 것의 높이가 가히 수백 척에 이르고, 사면이 모두 옥을 깎은 듯하였다. 그것을 서석, 규봉이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모두 여기에서 취한 것이다. 물이 있어 잔잔히 흐르고, 솟구치는 것은 돌눈이다. 비록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 옛날에 의상대사가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비로소 규봉암을 세웠다고 한다. 계속하여 보조국사, 진각국사, 양진국사가 득도하였으니 그 향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삼존석과 열두 대를 보니 모두 상상할 만하다."

[특징]

「서석규봉기」는 비교적 짧은 단편이지만, 글의 배경이 되는 서석대와 규봉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석규봉기」는 최초의 무등산 유산기이다. 또한, 규봉암의 창건 배경과 산의 자연적으로 생성된 독특한 면모를 전달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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