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94
한자 趙晶鎬
영어공식명칭 Jo Jeong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상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조정호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0년대 후반 - 조정호 일본 간사이[關西]대학 전문부(專門部) 중퇴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조정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53년 - 조정호 영화감독 데뷔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조정호 한국감독협회 이사
거주|이주지 조정호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지도보기
성격 영화감독
성별
대표 경력 한국감독협회 이사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에서 거주한 영화감독.

[활동 사항]

조정호(趙晶鎬)[1919~ ]는 191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일본 간사이[關西]대학 전문부(專門部)를 중퇴했다. 1942년 조직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연출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1953년 공보처에서 제작한 단편 문화영화 「여군」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1956년 집을 나온 기혼녀와 인테리 기혼남의 애정문제를 다룬 김진규, 윤인자 주연의 「전후파」를 연출했다. 이후 기생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그대는 돌아왔건만」[1958], 김성한의 연재만화를 영화화한 「고바우」[1959], 라디오 드라마로 인기를 끈, 자매와 한 남자의 삼각관계를 그린 「별하나 나하나」[1959]를 비롯해 유명한 동요와 가요를 소재로 한 「바위고개」[1960], 「황성옛터」[1961]를 연출했다.

「황성옛터」를 연출하면서 사기 혐의로 제작자가 고소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했는데 마지막 연출작은 1964년 제작자 이원린이 신필름 이름으로 제작한 「갈매기 우는 항구」이다. 1950년대 중반 한국감독협회 간사를 역임했으며, 4·19 혁명 이후에 개편된 한국감독협회의 이사로 선임되었다. 1970년 영등포구 대방동[현재 동작구 대방동]에 거주하였다.

[저술 및 작품]

「여군」[1954], 「전후파」[1957], 「그대는 돌아왔건만」[1958], 「고바우」[1959], 「별하나 나하나」[1959], 「황성옛터」[1961], 「갈매기 우는 항구」[1964]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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