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주교환어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449
한자 漢江舟橋還御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세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95년연표보기 - 「한강주교환어도」 제작
제작 시기/일시 1796년 - 홍석주(洪奭周)의 문집에 따르면 『화성행행도병풍(華城行幸圖屛風)』은 1796년에 제작. 병풍에 수록된 1796년 완공된 「서장대야조도」의 모습에서 제작연도 유추.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4월 15일연표보기 - 『화성행행도병풍』 보물 지정
현 소장처 리움미술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한남동 747-18]
성격 궁중기록화
서체/기법 비단에 채색
소유자 개인
관리자 리움미술관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1795년(정조 19) 정조가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노량진에서 배다리를 이용하여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그린 궁중기록화.

[개설]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는 1795년(정조 19)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총 8일간 정조가 생부인 사도세자의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한 과정을 그린 『화성행행도병풍(華城行幸圖屛風)』의 여덟번째 폭의 그림이다. 1795년 윤 2월 16일 정조의 행차가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에서 잠시 머무른 후에 노량진에서 배다리를 가설하여 한강을 건너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화성행행도병풍』은 역사적 기록과 풍속을 담고 있으며, 리움미술관 소장으로 200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궁중기록화로 당대 최고 기량을 지닌 궁중 화원의 회화적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형태 및 구성]

「한강주교환어도」는 1795년 윤 2월 16일 정조가 시흥행궁에서 출발하여 용양봉저정에서 노량진에 가설된 배다리를 건너 용산에 도착하여 창덕궁으로 가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조는 강폭과 완만한 물의 흐름, 왕이 타는 가마인 연(輦)의 거둥 길을 고려하여 배다리의 배치를 노량진으로 정했다. 배다리를 설치할 때는 경강(京江) 상인들의 배를 모아 편제하였다. 원행에 배다리를 만드는 공사는 열흘이 걸렸고, 규격이 같은 교배선(橋排船) 36척을 빌리고, 배다리 좌우로 위호선(衛護船) 12척을 묶어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난간(欄干) 240척, 홍살문 3개를 가설하였다.

화면에는 용양봉저정노량진 주변에 왕의 행차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인 풍속적인 장면이 연출되었고, 배다리 위로 위엄을 갖춘 왕과 왕실 가족의 행차, 행차 좌우로 깃발을 들고 배에 도열한 수부(水夫), 화면 아래 왕을 맞이하는 신하들과 군중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특징]

「한강주교환어도」의 화면 위쪽은 왕의 행차가 용양봉저정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에 가설된 배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배다리 위에는 3개의 홍살문이 가설되었고, 가운데 홍살문을 사이에 두고 혜경궁의 가마와 정조의 어마(御馬), 그 위로 두 공주의 가마가 지나고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배다리는 비스듬한 사선으로 연출되어 왕의 행차를 돋보이게 하고, 배다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는 투시도법과 부감법을 활용하여 배다리를 가설한 전후의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당대 규장각 자비대령화원으로 최고의 기량을 지닌 최득현(崔得賢), 김득신(金得臣)[1754~1822], 이명규(李命奎), 장한종(張漢宗)[1768~1815], 윤석근(尹碩根), 허식(許寔)[1762~?], 이인문(李寅文)[1745~1821]이 제작에 참여하여, 우아하고 세밀한 필치로 왕의 행차가 한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노량진용양봉저정, 한강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색채와 필치로 사료와 풍속, 왕실문화와 관련하여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어 궁중기록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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