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399
한자 漢江神社
이칭/별칭 노량진웅진강신사(鷺梁津熊津江神社),웅진신사(熊津江神社),신명신사(神明神祠)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혜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12년 10월연표보기 - 한강신사 건립
개칭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한강신사에서 신명신사로 개칭
성격 신사

[정의]

시키 신타로가 1912년 10월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건립한 신사.

[개설]

한강신사는 일제 강점기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던 신사이다. 설립 초기 한강신사의 제일(祭日)은 5월 4일과 11월 3일이었고, 제신(祭神)은 셋으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管原道眞][845-903], 미야지다케 다이진구[宮地岳太神宮], 고토히라 다이진구[琴平太神宮]였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헤이안[平安] 시대의 인물로서 문장이 뛰어나 학문의 신으로 추앙되었으며, 미야지다케 신궁은 신공황후(神功皇后)를 모시는 신사로서 시키 신타로[志岐信太郞][1869-?]의 고향인 후쿠오카[福岡]에 총본산이 있다. 고토히라 신궁은 금비라(金毘羅)를 모시는 곳으로, 일본에서는 항해의 안전이나 상업 번성, 풍농을 비는 신으로 숭앙되었다.

[건립 경위]

한강신사는 경부철도,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 공사 등에 참여했던 토목건축회사 시키구미[志岐組]의 대표였던 시키 신타로가 1912년 10월 다이쇼[大正] 천황[1879~1926]의 즉위를 기념하고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조선인에게 경신숭조(敬神崇祖) 사상을 보급한다는 명목으로 사재(私財)를 들여 건립했다고 한다. 그 자리는 본래 도당칠성 터였고, ‘와룡송(臥龍松)’이라 불리던 수백 년 넘는 신목(神木)이 있어서 조선인들이 숭배하던 영산이었다. 그런 자리에 50여 평의 2층 목조건물로 된 일본 신사를 세웠던 것이다.

[변천]

한강신사는 1915년 즈음에는 웅진강신사(熊津江神社)로 불렸는데, 1934년에 다시 신명신사(神明神祠)로 명칭과 성격이 바뀌었다. 명수대 일대의 토지를 개발한 기노시타 사카에[木下榮][1887-?]를 포함해 72인이 조선총독부에 신청하여, 1934년 5월 9일 조선총독으로부터 신명신사의 설립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사(神社)가 신사(神祠)로 바뀌면서, 제신(祭神) 또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외 11신(神)을 모시게 되었고 일반대중을 참배시키는 공간으로 변모하여 관제신앙적 성격이 강해졌다.

[현황]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는 전국적으로 신사참배를 강제하는 정책을 실시하였고, 이때 한강신사는 일본인은 물론 인근에 거주하는 조선인까지도 신사참배를 하러 가는 곳이 되었다. 이후 광복이 되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주민들 역시 일제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한강신사를 허물었다. 그 자리를 6·25전쟁 때 국군이 작전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한강신사 자리에는 세종 때 우의정을 지냈던 노한(盧閈)[1376~1443]의 정자였던 효사정(孝思亭)이 들어섰는데, 1994년 서울정도600년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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