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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66
한자 李鍾一
이칭/별칭 묵암(默菴),옥파(沃坡),천연자(天然子)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8년 11월 6일연표보기 - 이종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8년 8월 8일 - 이종일 『제국신문』 창간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이종일 동학 입교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이종일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2월 22일 - 이종일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25년 8월 31일연표보기 - 이종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이종일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출생지 이종일 출생지 -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5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보성사(普成社) 사장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개설]

이종일(李鍾一)[1858~1925]은 1898년 8월 순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해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배양시키고자 노력하는 등 사회운동에 전력했다. 1919년 3.1운동에는 천도교 대표로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가계]

이종일의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묵암(默菴), 옥파(沃坡)이다. 이교환(李敎煥)의 장남이다.

[활동 사항]

이종일은 1858년 11월 6일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서울로 올라와 한학을 공부하고, 김윤식(金允植), 이도재(李道宰) 등으로부터 개화사상을 전수받았다. 25세이던 1882년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개화운동에 나셨고 1898년 8월 순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1906년 홍산(鴻山)에 거주하던 최학래(崔鶴來)의 권유에 의해 동학에 입교했다. 이후 『천도교월보』 과장,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 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종일은 1919년 3·1운동에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는데, 특히 보성사 사장으로서 인쇄의 책임을 맡았다. 이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이종일은 1921년 12월 22일 가출옥 형식으로 석방되었다. 말년에 이종일은 후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끼니조차 없어 결국 영양실조로 1925년 8월 31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묵암비망록』이 있다.

[묘소]

이종일의 유해는 아현동 화장장에서 화장한 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36년 5월 이태원 공동묘지가 헐리게 되자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었다.1966년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5로 천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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