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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군 단연보상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386
한자 玄風郡 斷煙報償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현풍군 단연보상회 설립
최초 설립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성격 국채 보상 운동 단체

[정의]

1907년 경상북도 현풍군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국채 보상 운동 단체.

[개설]

1907년 1월 대구의 대동 광문회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발기된 이래 당시 경상북도 현풍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도 국채 보상 운동을 위해 단연보상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설립 목적]

1907년 1월 대동 광문회가 국채 1,300환을 갚아 국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채 보상 운동을 발기하자 현풍군에서도 김진극과 김오발이 국채를 갚아 국권을 지킬 목적으로 현풍군 단연보상회(玄風郡斷煙報償會)를 발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현풍군의 국채 보상 운동은 단연보상회를 통해 전개되었다. 현풍군 단연보상회의 국채 모금 방법은 국채 보상 운동을 처음 발기한 대동 광문회의 서상돈, 김광제의 주장처럼 담배를 끊어 그 대금을 모아 나라 빚을 갚자는 것이었다. 국채 보상 운동의 그러한 취지는 현풍군의 김진극과 김오발이 발기한 현풍군 단연보상회의 취지서에 잘 나타나 있다. 곧 국채 보상은 자기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 대한 제국의 독립 기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의의와 평가]

1907년 현풍군 단연보상회를 통한 국채 보상 운동은 항일 민족 운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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