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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동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619
한자 惠永[東區]
영어공식명칭 Hyeyeong
이칭/별칭 홍진(弘眞),보자(普慈),진응(眞應)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228년연표보기 - 혜영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238년 - 혜영 출가
수학 시기/일시 1244년 - 혜영 승과 합격
활동 시기/일시 1259년 - 혜영 삼중대사의 법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274년 - 혜영 통도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얻음
활동 시기/일시 1290년 - 혜영 원나라에서 『인왕경』 강의
활동 시기/일시 1292년 - 혜영 동화사 주지
몰년 시기/일시 1294년 1월 24일연표보기 - 혜영 사망
성격 승려
성별 남성

[정의]

고려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위치한 동화사에서 주지로 활동한 고승.

[가계]

혜영의 성은 강씨(姜氏)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출신이다. 아버지는 내원승(內園丞)을 지낸 강자원(姜子元)이고, 어머니는 홍씨(洪氏)로 홍인연(洪仁衍)의 딸이다.

[활동 사항]

혜영은 1228년(고종 15)에 태어났다. 11세인 1238년(고종 25)에 출가하여 남백월산(南白月山)의 수좌(首座) 충연(沖淵)의 제자가 되었고, 17세인 1244년(고종 31)에 왕륜사 선불장에서 승과에 합격하여 흥덕사(興德寺)에 머물렀다. 1259년(고종 46)에 선종의 높은 승계인 삼중대사(三重大師)의 법계를 받았고, 1263년(원종 4)에 수좌가 되었다. 1267년(원종 8) 속리사(俗離寺)로 이주하였으며, 1269년(원종 10) 승통이 되었다. 혜영이 1274년(원종 15) 통도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 여러 매를 얻어 항상 좌우에 두었더니 많은 분신사리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하는 사람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1274년 중흥사(重興寺)로 거처를 옮기고, 왕명에 의해 9년 동안 개성에 머물렀다.

1285년(충렬왕 12)에는 유가사(瑜伽寺)로 옮겼고, 1290년(충렬왕 16) 사경승(寫經僧) 백 명을 데리고 원나라에 들어가서 금니(金泥)로 『법화경』을 사경하여 선물로 올리자, 세조가 크게 기뻐하면서 혜영을 경수사(慶壽寺)에 머무르게 하였고, 만안사(萬安寺) 당두(堂頭)의 청으로 『인왕경』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듬해 금니(金泥)로 『대장경』을 사경하고 귀국하였다.

1292년(충렬왕 18) 국존(國尊)에 봉해져 보자(普慈)라는 법호를 받고 오교도승통이 되어 동화사의 주지를 맡았다. 홍진국사동화사 주지로 임명될 때 충렬왕은 신하를 데리고 내려와 오배지례(五拜之禮)를 행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국사와 왕사는 왕에게 스승의 예를 받는 높은 위치였다. 1294년(충렬왕 20) 1월 24일 단정히 앉아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을 읽다가 입적하였다. 세수 67세, 법랍[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56년이었다.

[사상과 저술]

혜영의 저서로는 42세 때 유경(柳璥)의 청으로 지은 『백의해(白衣解)』 1권이 있다.

[묘소]

혜영은 1294년 2월 2일 용수산(龍首山) 남쪽 산기슭에서 화장하여 사리를 수습하고 탑은 동화사(桐華寺)에 세웠다.

[상훈과 추모]

혜영의 시호를 홍진(弘眞), 탑호(塔號)를 진응(眞應)이라 추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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