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580 |
---|---|
한자 | 大邱宣敎支會 |
영어공식명칭 | Daegu Missionary Union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희 |
설립 시기/일시 | 1899년 5월 1일 - 대구선교지회 설립 |
---|---|
최초 설립지 | 대구선교지회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23 |
성격 | 종교단체 |
[정의]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개신교 단체.
[설립 목적]
대구선교지회는 대구·경북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변천]
한국 장로교회의 경우 1884년 이래로 미국 북장로회[1884], 호주 빅토리아장로회[1889], 미국 남장로회[1892], 캐나다 장로회[1897]를 통하여 선교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4대 장로교 선교부는 1893년 선교부 간의 연합체인 ‘선교사 공의회’를 조직하여 상호 협의와 합의를 거처 선교 지역을 분할하기로 하였다. 각 선교회 사이에 중첩을 피하고 돈과 시간과 힘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부산 지역은 미국 북장로회와 호주 빅토리아장로회가 함께 선교하고 있었는데 선교사 공의회의 협정에 따라 부산에는 두 선교회가 함께 상주하기로 하고, 경상도 남부는 호주빅토리아 장로회가, 낙동강의 이북은 미국 북장로회가 선교 구역으로 합의하였다.
베어드는 ‘예양 협정’에 따라 새로운 선교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1893년 4월 17일 월요일부터 5월 20일 토요일까지 경상도 북부 지방 순회 전도 여행을 시작하였다. 베어드는 대구에서 3일 간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 서적을 나누어 주는 한편, 선교 기지로서 대구가 적합한지 여부를 살펴본 듯하다. 베어드는 선교 전략상 대구의 장점 6가지를 미국 해외선교부에 제시하였다. 첫째, 대구는 경상도 북부 지방의 중심지이다. 둘째, 대구는 인구가 많다. 셋째, 교통상으로 볼 때 서울과 부산이 연결되는 지점이고 수로[낙동강]로 부산에 닿을 수 있다. 넷째, 경상감영[관찰사]이 있는 행정의 중심지이다. 다섯째, 약령시가 열리는 상업의 중심지이다. 여섯째,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관청의 반대가 없다.
2차 순회 전도 여행을 다녀온 베어드는 ‘대구 선교지부’ 개설을 청원하여 1895년 11월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대구에 독립적인 선교지부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 선교지부의 감독을 받는 내륙지회[Inland Station]로서 허가한다는 조건부 승인이었다. 대구가 독립지부가 되려면 주재 선교사가 최소한 3명이 필요하였다. 베어드는 1896년 1월 대구 남문 안에 있는 정완식 소유의 땅 420평[약 1,388㎡]과 초가집 5동 20여 칸과 기와집 1동 6칸의 대저택을 매입하였다. 그러나 베어드는 대구에서 사역한 지 약 6개월 뒤 서울 지역 교육 담당 고문으로 옮겨 갔고, 베어드의 후임으로 처남 아담스(James E. Adams)[안의와] 선교사가 부산에서 대구로 옮겨 와서 대구 선교지부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또한 1897년 12월 25일 의료 선교사 존슨(Woodbridge O. Johnson)[장인차]이 부인과 함께 대구에 부임하여 제중원[현 동산의료원]을 설립하였다. 1899년 5월 1일 세 번째 선교사인 브루엔(Henry M. Bruen)[부해리]이 부임하였다. 브루엔이 부임하면서 선교지회는 공식적으로 개설되었다. 대구선교지회는 1941년 일제에 의하여 선교사들이 추방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선교지회의 주요 활동은 조사(助事)들과 함께 순회 전도를 하며,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고, 사경회를 개최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현황]
아담스 선교사는 계성학교를 설립하고, 1897년 대구제일교회 설립을 시작으로, 31개 교회[경산군 10개, 영천군 6개, 달성군 5개, 대구시 2개, 청도군 4개, 고령군 1개, 영일군 1개, 청송군 2개]를 설립하였다.
브루엔 선교사는 1901년 김천군 송천교회 설립을 시작으로 1923년 김천군 대신교회 설립까지 56개 교회[김천군 22개, 선산군 10개, 달성군 8개, 칠곡군 5개, 성주군 3개, 고령군 3개, 상주군 2개, 대구읍 1개, 영천군 1개, 군위군 1개]를 설립하였다.
맥파랜드(E. F. McFarland)[맹의와] 선교사는 23개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어드먼(Walter C. Erdman)[어도만] 선교사는 의성군을 중심으로 군위군과 달성군에서도 사역을 하였고, 17개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1914년 대구남자성경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하였다. 1925년 안식년 후에는 평양으로 옮겨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전임교수로서 구약문학과 성경해석학을 가르쳤다.
블레어(H. E. Blair)[방혜법] 선교사는 6개 교회를 설립하였다. 윈(George H. Winn)[위철치] 선교사는 1913년부터 영일, 영덕, 청송, 의성 지방에서 활동하며 17개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1918년부터 1919년 12월 31일까지 대구 계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였고, 1937년 서울 선교지부로 옮겼다.
그린필드(M. Willis Greenfield)[권일두] 선교사는 대구 북편, 의성 남편, 군위, 인동 동편, 선산 동편, 칠곡, 경산, 의홍 신령, 청송 남편, 영일군 등지에서 활동하며 9개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존스(W. O. Johnson)[장의사] 선교사는 제중원[현 동산의료원]을 설립하여 의료선교를 전개하였다. 이 외에도 40여 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선교지회는 대구·경북 지역 장로교의 설립과 성장과정 및 대구광역시 지역의 장로교 역할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선교지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