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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물산 임금투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056
한자 南鮮物産 賃金鬪爭
영어공식명칭 Nam Seon Corporation Wage Strugle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장소 남선물산 노동조합 파업 - 남선물산 비산공장|이현공장
종결 장소 남선물산 노동조합 파업 - 남선물산 비산공장|이현공장
성격 노동쟁의
관련 인물/단체 남선물산 노동조합

[정의]

1989년 대구광역시에 있는 남선물산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투쟁을 위하여 일으킨 파업.

[개설]

6·29 선언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분규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남선물산 노조도 임금인상을 위하여 1989년과 1990년에 임금투쟁을 벌였다. 1989년 임금투쟁에서, 남선물산 노조 측은 임금을 32% 인상한 6만 3800원 지급할 것, 상여금을 244%에서 366%로 인상할 것, 초임을 인상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회사 측은 임금 8.9% 인상과 타 회사 수준의 상여금 안을 제시하며 두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였다. 1989년 3월 14일 노동자들은 노동쟁의 발생을 신고하고, 3월 24일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8차례의 노사 협상에도 불구하고 별 진전이 없다가, 4월 11일 회사 측이 직장폐쇄 신고를 함으로써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역사적 배경]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선언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노동자들의 불만이 일시에 분출되었다. 1987년 7월, 8월에는 엄청난 노사분규 사태가 벌어졌으며, 그 양상 또한 거칠어졌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분규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분규 기간은 장기화 추세를 보였다. 또한 민주화 직후에는 단체교섭과 임금인상 중심으로 분규가 일어났으나 점차 쟁점이 다양화되면서 경영참가, 복지 문제 등으로 확산되었고, 분규 유형도 집단 농성, 작업거부 등으로 나타났다.

[경과]

파업 2개월 만에 남선물산 비산공장과 이현공장의 노조는 1989년 5월 2일 회사 측이 제시한 임금인상 안을 찬반 투표하였다. 회사 측 제안은, 비산공장 남자 직원 5만 5000원, 여직원 3만 5000원 임금인상, 상여금 비산공장 300%, 이현공장 280% 지급, 가족수당 2명에 각 5000원, 월 2회 휴무와 휴일 및 특근수당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회사 측의 임금인상 안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 337명이 참여하여 찬성 202명, 반대 126명, 무효 9명으로 가결되었다. 또한 파업 기간 중의 임금에 대하여 기본금의 50%를 생활 보조비로 지급하기로 하며, 파업 60일 만에 극적으로 타결되어, 6월 1일부터 정상 조업에 들어갔다.

1990년 임금투쟁은 남선물산 비산공장과 이현공장 노조원 830명이 임금 정액 7만 7388원 인상, 상여금 기본금의 560% 지급, 근로시간 1시간 단축, 일요일 휴무 4회 실시 등을 요구하며 회사 측과 교섭하였다. 그 결과 회사 측이 임금 7% 인상을 제시하였고, 8차례의 교섭에도 불구하고 타결하지 못하였다. 1990년 임금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1990년 5월 21일 총파업에 들어갔다.

회사 측은 5월 26일 노조 간부 13명을 불법파업으로 고소하여 노조위원장 고태권 등 노조 간부 5명이 구속되었다. 3명은 회사 굴뚝에서 60일간 농성을 벌여오던 중 파업 103일째 노동자들이 선조업을 바라면서 이탈하였고, 굴뚝에서 농성 중이던 노조 간부들이 8월 31일 구속되었다. 110일을 끌어온 파업은 선조업 후협상을 원하는 조합원들에 의하여 9월 7일 420명이 찬반 투표 없이 파업 철회를 결정하였다. 회사 측도 직장폐쇄 철회 신고서를 제출하여 9월 10일부터 조업을 재개하였다.

9월 14일부터 임금협상을 재개하였는데, 염색 분야는 남자 4만 원, 여자 3만 원, 상여금 20% 인상, 제직 분야는 남자 3만 5000원, 여자 2만 원 인상, 상여금 10% 인상, 5월 1일부터 5월 20일까지 태업기간 중 임금 100% 지급, 고소·고발 쌍방 취하 등 10개 항에 극적으로 합의하여 6개월 간 끌어온 임금 협상안을 마무리하였다.

[결과]

노조 측은 파업 주동자의 복직을 요구하였으나, 사용자 측이 완강히 거부하여 결국 태업 기간 중 임금 지급 선에서 노조가 양보하여 타결을 보게 되었다. 또한 파업 기간인 5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110일 간의 임금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기로 하였다.

[의의와 평가]

6·29선언을 계기로 정부가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고 간섭하며 노동운동을 억제하던 정책은 종언을 고하면서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였지만, 노·사·정이 합리적으로 풀어 갈 수 있는 경험이 되었던 임금투쟁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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