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31
한자 大邱 時至洞 碑石群
영어공식명칭 Daegu Siji-dong Biseokgun|Monument Stones in Siji-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3067[시지동 16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17년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현령박후휘종구거사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43년 혹은 1903년 10월 - 대구 시지동 비석군 전오위장강대봉송덕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52년 3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종이품봉상사제조서상하송덕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69년 12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현령심후휘수준청덕애민선정불망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71년 5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현령이후헌소청덕선정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78년 3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현령이후만승청덕선정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85년 3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관찰사조상국강하영세불망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91년 5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순상국김공휘명진영세불망비 건립
건립 시기/일시 1898년 4월연표보기 - 대구 시지동 비석군 통훈대부김대엽시혜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8년 - 대구 시지동 비석군 현 위치인 고산초등학교 내로 이전
현 소재지 고산초등학교 정문 왼쪽 -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3067[시지동 161]지도보기
성격 기념비
관련 인물 김대엽|서상하|이헌소|강대봉|조강하|심수준|이만승|김명진|박종구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140~171㎝[전체 높이]|100~119㎝[비신 높이]|38~52㎝[비신 너비]|14~44㎝[비신 두께]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관리들의 공적을 칭송하는 기념비의 무리.

[개설]

대구 시지동 비석군은 통훈대부김대엽시혜비(通訓大夫金大燁施惠碑), 종이품봉상사제조서상하송덕비(從二品奉常司提調徐相夏頌德碑), 현령이후헌소청덕선정비(縣令李侯憲昭淸德善政碑), 전오위장강대봉송덕비(前五衛將姜大鳳頌德碑), 관찰사조상국강하영세불망비(觀察使趙相國康夏永世不忘碑), 현령심후휘수준청덕애민선정불망비(縣令沈侯諱壽浚淸德愛民善政不忘碑), 현령이후만승청덕선정비(縣令李侯晩昇淸德善政碑), 순상국김공휘명진영세불망비(巡相國金公諱明鎭永世不忘碑), 현령박후종구거사비(縣令朴侯宗球去思碑) 등 관리들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석 아홉 기를 가리킨다. 이 비석들은 모두 19세기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건립 경위]

통훈대부김대엽시혜비는 통훈대부(通訓大夫) 김대엽(金大燁)이 은혜를 베푼 것을 기리고자 1898년(광무 2) 4월에 세웠다.

종이품봉상사제조서상하송덕비는 종이품(從二品)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를 지낸 서상하(徐相夏)가 빈민 구휼에 힘쓴 덕을 칭송하고자 임자년[1852년으로 추정] 3월에 세웠다.

현령이후헌소청덕선정비는 당시 현령(縣令)인 이헌소(李憲昭)가 선정을 베푼 것을 칭송하고자 1871년(고종 8) 1월에 세웠다.

전오위장강대봉송덕비는 극심한 가뭄으로 허덕이는 백성들을 보고 보리 370여두와 금전을 낸 강대봉(姜大鳳)의 선행을 기리고자 계묘년[1843년 혹은 1903년] 10월에 세웠다.

관찰사조상국강하영세불망비는 관찰사(觀察使) 조강하(趙康夏)의 공적을 기리고자 1885년(고종 22) 3월에 세웠다.

현령심후휘수준청덕애민선정불망비는 고산(孤山) 현령(縣令) 심수준(沈壽浚)이 선정을 베푼 것을 칭송하고자 1896년(건양 원년) 12월에 세웠다.

현령이후만승청덕선정비는 고산(孤山) 현령(縣令) 이만승(李晩昇)이 창고를 열어 주민들을 구휼했음을 칭송하고자 1878년(고종 15) 3월에 세웠다.

순상국김공휘명진영세불망비는 빈민구제와 수많은 이농자들에게 농토를 주어 정착시키는 등 김명진(金明鎭)이 베푼 많은 공적을 칭송하고자 1891년(고종 28) 5월에 세웠다.

현령박후휘종구거사비는 고산(孤山) 현령(縣令) 박종구(朴宗球)가 감세 혜택을 주고 흉년에 구휼하는 등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고자 1817년(순조 17)에 세웠다.

[위치]

대구 시지동 비석군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3067[시지동 161] 고산초등학교의 정문 왼쪽에 아홉 기가 나란히 서 있다.

[형태]

대구 시지동 비석군에 포함된 각각의 비석 형태는 돌 또는 시멘트로 만든 받침돌인 비부(碑趺)에, 비문을 새긴 몸체인 비신(碑身)과 지붕돌[비개(碑蓋)]을 올린 형태이다. 관찰사조상국강하영세불망비, 현령이후만승청덕선정비의 받침돌은 거북 모양이다. 대부분의 지붕돌은 팔작지붕 형태이지만, 현령심후휘수준청덕애민선정불망비는 연화무늬가 새겨진 반타원형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140~171㎝ 정도이며, 비신의 규모는 높이 100~119㎝, 너비 38~52㎝, 두께 14~44㎝ 정도이다.

[현황]

대구 시지동 비석군에 포함된 비석들의 원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오랫동안 수성구 고산동 지역 국도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8년 국도가 확장되면서 고산회(孤山會)에서 현재 위치인 고산초등학교 내에 옮겨 와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 시기 이후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들의 선정을 칭송하는 기념비가 우후죽순 격으로 세워지던 시기인데, 이러한 양상은 대구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대구 시지동 비석군뿐 아니라 대구향교 등에서 모은 경상감영공원 내의 비석군, 서호동 비석군에서도 관리들의 기념비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마구잡이로 기념비가 세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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