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30
한자 大邱 時至洞 -
이칭/별칭 대구 시지동 지석묘군,고산 지역 고인돌[지석묘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285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청동기시대 - 대구 시지동 고인돌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3월 15일~1995년 3월 15일 - 대구 시지동 고인돌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소재지 대구 시지동 고인돌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285 지도보기
성격 고분
양식 고인돌|돌널무덤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개설]

대구 시지동 고인돌매호동 고인돌, 사월동 고인돌과 함께 ‘고산 지역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시지동 고인돌시지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된 유적이며 Ⅰ·Ⅱ의 2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위치]

대구 시지동 고인돌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285번지 일원이다. 매호동 고인돌의 서쪽에 일렬로 있으며, 시지동 고인돌Ⅰ·Ⅱ는 13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현재 달구벌대로시지중학교 사이에 조성된 주택단지 내에 해당되며, 두 곳 모두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1992년 3월 15일부터 1995년 3월 15일까지 대구시지택지개발지역 내에 포함된 대구 시지동 고인돌Ⅰ·Ⅱ에 대한 발굴 조사를 하였다. 대구 시지동 고인돌Ⅰ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3기, 돌널무덤[석관묘] 15기가 조사되었고, 대구 시지동 고인돌Ⅱ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1기, 돌널무덤 2기, 집터[주거지] 1기, 삼국시대 이후의 석렬, 구, 도로 등이 조사되었다.

[형태]

대구 시지동 고인돌Ⅰ은 고인돌 3기와 돌널무덤 15기가 4열로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고, 시지동 고인돌Ⅱ는 고인돌 주변에 인접하여 돌널무덤 2기가 확인된다.

시지동 고인돌Ⅰ의 1호, 2호 고인돌의 덮개돌 아래에서 지상식(地上式) 돌널[석관]이 확인되었다. 얕게 굴광을 파서 판석 1매를 놓아 바닥면을 맞추고 바닥석 위에 돌널을 만들었다. 돌널 주위에 할석을 2단 정도 돌려 쌓아서 돌널을 보강하고 덮개돌을 받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의 뚜껑돌[개석]은 확인되지 않는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 아래에서 지하식 돌널[석관]이 확인되었다. 굴광을 파서 바닥에 지름 10㎝ 미만의 잔자갈을 깔고 벽면을 따라 할석을 7~8단 정도 쌓아 돌널을 만들었다. 돌널 주위에 할석을 돌려 쌓아서 돌널을 보강하고 덮개돌을 받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돌널 뚜껑돌[개석]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구 시지동 고인돌Ⅱ의 고인돌 덮개돌 아래에서는 돌무지가 확인되었다. 돌무지의 중앙에는 지상식 장방형 돌널 1기가 확인되었다. 시지동 고인돌의 돌널무덤은 모두 지하식 돌널이며, 먼저 묘광을 파고 바닥 전체에 잔자갈 한 겹을 깔고 위에 판석 1매를 놓거나 잔자갈 또는 판석만을 놓아 바닥 시설을 하였다. 바닥시설 위에 판석을 세우거나 판석과 할석을 여러 단 쌓아 돌널[석관]을 만들고 묘광과 돌널 사이에 천석과 할석을 섞은 흙을 채워 넣었다. 돌널 주변에 잔자갈을 일정 범위에 깔아 묘역으로 만들었다.

[출토 유물]

대구 시지동 고인돌 중에서 지하식 돌널무덤이 확인된 Ⅰ의 3호 고인돌에서만 붉은간토기 긴목항아리[장경호] 1점, 간돌칼[마제석검] 1점, 돌화살 3점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에서는 붉은간토기 긴목항아리, 간돌검, 돌화살이 출토되었고, 시지동 고인돌Ⅰ의 11호에서는 관옥 2점, 시지동 고인돌Ⅱ의 2호에서는 관옥 11점이 출토되었다. 시지동 고인돌과 돌널무덤의 묘광과 돌널 사이에서는 민무늬토기편과 붉은간토기편이 돌과 함께 채워져 있었는데,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대구 시지동 고인돌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후 시지 택지 개발이 이루어져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2017년 9월 2일부터 시지동 누리어린이공원에서 매년 고산3동 고인돌축제를 개최하여 지역의 고인돌 유적지를 널리 알리고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시지동 고인돌Ⅰ의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4열로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은 일정한 기획성을 가지고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월동 고인돌, 매호동 고인돌과 함께 고산 지역 청동기시대 고인돌 축조 집단의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