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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569
한자 李亨天
영어공식명칭 Lee Hyeongcheon
이칭/별칭 입여(立汝),구원정(九元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0년 8월 22일연표보기 - 이형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02년 - 이형천 구원정 건립
활동 시기/일시 1708년 - 이형천 석후정 중수
몰년 시기/일시 1709년 2월 11일연표보기 - 이형천 사망
묘소|단소 이형천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황금동 일대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영천(永川)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인 학자.

[가계]

이형천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입여(立汝), 호는 구원정(九元亭)이며,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휴운(李休運), 아버지는 이언직(李言直),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로, 채지해(蔡之海)의 딸이다. 부인은 성주여씨(星州呂氏)로, 여창우(呂昌佑)의 딸이다. 아들 이재춘(李載春) 한 명을 두었다.

[활동 사항]

이형천은 1650년(효종 1) 8월 22일에 태어나,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살았다. 이형천은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이 『효경(孝經)』을 강조한 가르침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30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9세에 아버지 이언직이 세상을 떠났다.

1696년(숙종 22)에 관찰사가 효행과 은절(隱節)로 천거하여 장릉참봉(章陵參奉)과 장수찰방(長水察訪)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만년인 1702년(숙종 28)에 구원정(九元亭)을 지은 뒤에 정자 이름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매번 봄에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 달이 뜨면 술을 휴대한 채 벗들을 이끌고 산과 계곡을 찾아다니며 유람의 즐거움을 즐겼다고 한다. 1708년(숙종 34)에 석후정(石后亭)을 중수하였다. 1709(숙종 35)년 2월 11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0세였다.

이형천은 집에 있을 때는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섬기고 친족들과 화목하게 지냈으며, 고을에 있을 때는 어른과 아이를 대할 때 차례가 있었고, 벗을 대할 때는 신의가 있었다. 세상을 경륜할 때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이형천은 학문[이론]보다 실행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행은 효가 기본이 됨을 밝히기 위하여 『대동만성충효록(大東萬姓忠孝錄)』과 『백행집(百行集)』 과 같은 충효에 관한 책들을 펴냈다. 그 밖에 저서로는 『구원정집』 2권이 있다.

[묘소]

이형천의 묘소는 수북면(守北面) 승현(蠅峴)[팔현, 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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