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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21
한자 金文軫
영어공식명칭 Kim Munchin
이칭/별칭 김문진(金文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5월 10일연표보기 - 김문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김문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2월 20일 - 김문진 제1회 학생지도자회의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김문진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0년 6월 24일 - 김문진 대구지방법원에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
몰년 시기/일시 1925년 11월 6일연표보기 - 김문진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20년연표보기 - 김문진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문진(金文軫)[1892~1926]은 1892년 5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문진(金文珍)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김문진은 1919년 2월 20일 서울 승동예배당에서 열린 제1회 학생지도자회의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대표로 참가하여 구체적인 독립운동 방법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2월 21일 연희전문학교 대표 김원벽으로부터 3월 1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전해들은 김문진을 비롯한 각 학교 대표들은 2월 25일 정동예배당 구내에 있는 이필주 목사 집에 모여서 중등급 이상 학생들은 3월 1일 모두 파고다공원에 집결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대구 출신 이갑성(李甲成)은 경상도 지방의 궐기 추진을 위하여 대구에 파견되었다. 2월 24일 대구에 도착한 이갑성은 개신교 계열 인사인 이만집(李萬執)·이상백(李相栢)·백남채(白南採) 등과 접촉하여 일본에 보낼 독립청원서에 대구 대표로 서명하여 주기를 부탁하였으나 확답을 듣지 못하자 2월 25일 상경하였다. 이후 이갑성김문진을 설득하여 2월 26일 대구로 내려보냈으나 김문진 또한 서명을 받지 못하고 상경하였다.

1919년 2월 28일 김문진이갑성에게 받은 독립선언서 약 1,500매를 정동예배당에 가져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독립의 필요성에 대하여 재차 강조하였다.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문진은 이굉상(李宏祥)에게 경상남도 마산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것을 권유하고 여비와 「독립선언서」 50매를 전달하였다.

김문진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20년 6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김문진은 1925년 11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문진의 공적을 기려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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