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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효자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645
한자 四孝子窟
이칭/별칭 「사효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3년 9월 10일 - 「사효자굴」 박기탁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5년 - 「사효자굴」『한국 구비 문학 대계』7-14 달성군편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사효자굴」『한국 구비 문학』Ⅱ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4년 - 「사효자굴」『대구의 뿌리 달성』에 수록
관련 지명 사효굴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360
성격 전설|효행 전설|동굴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노인|아들 사형제|왜병 장수
모티프 유형 왜병을 감동시킨 사 형제의 효성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에서 사효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사효자굴」임진왜란유가읍 음리 건너편 산의 굴에 숨어 있던 부친을 사형제가 죽음으로 구했다는 효행(孝行) 전설이며, 그 동굴을 '사효자굴'이라 부르게 된 동굴 유래 전설이다. 이를 「사효굴」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5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현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14 달성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1983년 9월 10일 제보자 박기탁[남, 당시 72세]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2002년 김광순이 편찬하고 국학 자료원에서 간행한 『한국 구비 문학』Ⅱ에는 「사효굴(四孝窟)」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에는 「사효자굴」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음리 건너편 산에 굴이 있다. 임진왜란 때, 한 노인과 아들 사 형제가 그 굴로 피난을 갔다. 굴에 숨어 있는데, 기침병을 앓던 노인이 기침을 하자 그 소리를 듣고 왜병이 그곳을 찾아왔다. 왜병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자, 노인은 자신을 죽이고 아들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장남이 나서면서 자기들은 죽어도 좋으니 아버지만은 살려 달라고 했다. 나머지 아들들도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먼저 큰아들을 데리고 나와서 죽이고 나니까, 둘째 아들이 따라나와서 또 나를 죽이고 부모님은 살려 달라 해서 죽이고, 셋째 아들, 넷째 아들도 똑같은 말을 해서 죽였다. 아들 네 명을 다 죽인 후, 아들들의 효성에 감동한 왜병 장수는 노인의 등에다 ‘효자의 아버지’라고 친필로 썼다. 그리고 '이 노인의 아들들을 전부 죽였으니 앞으로 어떠한 장수라도 이 사람은 절대 손대면 안 된다.' 라고 했다. 그래서 그 노인은 죽지 않고 아들 넷만 죽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도 그곳에는 사효자(四孝子)에 대한 비(碑)가 있고, 그 굴을 '사효자굴'이라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사효자굴」의 주요 모티프는 '왜병을 감동시킨 사 형제의 효성'이다. 자식이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에게 사랑으로 보답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에 유교의 효도라는 덕목이 가세함으로써 효행은 인륜의 근본이 되었다. 그런 사회 배경 때문에 효자·효녀의 이야기는 일찍부터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사효자굴」에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같은 날 함께 죽은 네 아들의 효심과, 네 아들의 죽음 앞에서 무력함과 슬픔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을 병든 아버지의 고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친을 살리는 사 형제의 효심은 왜병의 잔인무도함과 대비되어 더욱 돋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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