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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947
한자 金華植
영어공식명칭 Kim Hwasik
이칭/별칭 김진효(金鎭孝),충거(忠擧),수암(睡巖)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7년연표보기 - 김화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9년 - 김화식 식년시 생원시 2등 8위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882년 - 김화식 경기전 참봉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92년 - 김화식 연풍 현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94년 - 김화식 현풍 현감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김화식 사망
출생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서흥(瑞興)
대표 관직|경력 현풍 현감

[정의]

개항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서흥(瑞興). 초휘(初諱)는 김진효(金鎭孝), 자는 충거(忠擧), 호는 수암(睡巖). 아버지는 학생(學生) 김희전(金熙典), 동생은 김기식(金麒埴), 김진식(金震埴), 김구식(金求埴), 김창식(金昌埴), 김홍식(金弘埴)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인동 장씨(仁同張氏) 장석용(張錫龍)의 딸이다. 장석용의 아들은 경상 관찰사를 역임한 장승원(張承遠)이다. 장석용의 손자는 규장각 직각을 지낸 장길상(張吉相), 선산 군수를 지낸 장직상(張稷相),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張澤相)이다.

[활동 사항]

김화식(金華植)[1847~1912]은 1847년(헌종 13)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서 출생하였다. 33세가 되던 1879년(고종 16) 식년시(式年試) 생원시 2등(二等) 8위로 합격하였다. 1882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다. 1885년에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었다. 1887년 사직령(社稷令), 1892년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 현감(延豊縣監)을 거쳐 현풍 현감(玄風縣監)이 되었다. 『고종실록』에 나온 1894년 12월 27일 총리 대신이 영남 지방 관리들의 정사를 평가하여 보고하는 기록을 보면 "현풍 현감 김화식은 부역을 과중하게 시켜 폐단을 일으켜 온 경내가 원망하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원성이 있었던 이유는 『경와집략(敬窩集略)』 중권이 있는 『교번집략(嶠藩集略)』에 나타나 있다. 경상도 관찰사 일기인 『교번집략』의 「포폄제목(褒貶題目)」 신묘(辛卯) 십이월(十二月) 조를 보면 '김화식은 일천'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일천은 어떤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추정컨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현풍 지역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근심 걱정을 해결해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김화식은 가난한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지방의 토호들이나 권세가들을 찾아내 법으로 처벌하거나, 효유(曉喩) 또는 교화(敎化)시켰다. 따라서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상훈과 추모]

현풍 현감 재직 시절에 선정을 베풀어 현풍에 사는 백성들이 김화식에게 선정비를 세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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