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40
한자 達巖齋
영어공식명칭 Dalamjae
이칭/별칭 월암재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로20길 46[월암동 6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0년연표보기 - 달암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2월 - 달암재 개축
현 소재지 달암재 - 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로20길 46[월암동 681]지도보기
성격 재실|서당
양식 목조 기와|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2.5칸
소유자 삼모회
관리자 삼모회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이자 서당.

[개설]

달암재(達巖齋)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정착한 참봉(參奉) 최성희(崔聖禧), 임천군수(林川郡守) 조득도(趙得道), 참봉(參奉) 이언상(李彦祥) 등이 조선 후기인 1830년(순조 30)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립 당시에는 후손들의 훈육을 위한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전하며, 현재는 이언상, 조득도, 최성희 세 사람을 모시는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월암재실(月岩齋室)’이라고도 한다.

재실 안에 ‘삼모각(三慕閣)’이라는 비각이 있고, 비각 안에는 삼현유허비(三賢遺墟碑)가 있다. 삼현유허비는 1939년 기묘년에 세워졌으며, 비석에는 세 성씨의 입향조에 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글은 단운(丹雲) 민병승(閔丙承)이 짓고, 글씨는 이언상의 11세손인 이종식이 썼다. 비각 내부에는 ‘삼모각기(三慕閣記)’와 ‘삼모각중건기문(三慕閣重建記文)’이 걸려 있다. 달암재 한쪽에는 ‘처사 최만세 유혜불망비(處士崔萬世遺惠不忘碑)’와 ‘가선대부 최도삼 불망비(嘉善大夫崔道三不忘碑)’가 나란히 하나의 석비에 새겨져 있다.

[위치]

달암재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681에 있다. 근처 서쪽에 선돌마당공원이 있다.

[변천]

달암재는 ‘삼모사(三慕祠)’라는 사당 건물과 재실이 있었으나, 사당은 없어지고 현재는 재실만 남아 있다. 달암재 건물이 낡아 세 집안[경주최씨, 함안조씨, 성주이씨]의 모임인 삼모회(三慕會)가 주관이 되어 달암재와 비각[삼모각], 삼문[삼현문], 사적비 등을 복원할 것을 결의하고 2002년 5월에 착공하여, 2004년 2월에 준공하였다.

[형태]

현재 달암재는 대지 906㎡[274평], 건축 연면적 132.3㎡[40평] 규모에 2동의 목조 기와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正寢)은 4칸 9평, 사당은 1칸 2평의 크기이다. 솟을삼문을 갖춘 달암재는 정면 5칸, 측면 2.5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갖춘 ‘ㄷ’ 자 모양 건물이다. 가운데 3칸 대청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남쪽으로 돌출된 방이 있다. 동쪽 방은 삼현을 사모한다는 의미의 ‘삼모실(三慕室)’, 서쪽 방은 모여 재계한다는 뜻의 ‘취숙당(聚宿堂)’이다.

[현황]

달암재에 현재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지 않으나, 삼모회에서 관리하여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달암재는 유서 깊은 목조 기와 건물로서 가치가 있으며, 2004년 2월에 개축 공사를 마친 이래 세 문중 사람들뿐 아니라 대구 지역민들에게도 개방되어 전통문화 체험장, 청소년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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