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70
한자 景毅齋 思誠齋
영어공식명칭 Gyeonguijae·Saseongja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시대 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경의재 건립
건립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사성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경의재 중건
현 소재지 경의재·사성재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4길 31-5[노곡동 204]지도보기
원소재지 경의재·사성재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4길 31-5[노곡동 204]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경의재]|팔작지붕[사성재]
정면 칸수 5칸[경의재]|3칸[사성재]
측면 칸수 2칸[경의재]|2칸[사성재]
소유자 김녕김씨 노곡 문중
관리자 김녕김씨 노곡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김문기와 김귀송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개설]

경의재(景毅齋)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순절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이다. 김문기는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 후 1731년(영조 7) 조정에서 김문기의 관작을 복관하였고, 1757년(영조 33)에는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내렸다. 재실 이름을 ‘경의재(景毅齋)’라고 한 것은 김문기의 시호인 ‘충의(忠毅)’에 경모(景慕)한다는 의미를 더한 것이다.

사성재(思誠齋)김녕김씨(金寧金氏) 노곡동 입향조인 김귀송(金貴松)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김귀송은 김문기의 7대손인데, 선조인 김문기가 경상도아사(慶尙道亞使)로 대구에 부임하였을 때 금호강 변에 있는 노곡동 지역을 즐겨 찾았다는 것을 알고 노곡동으로 이거하여 조상을 숭모하며 살았다고 한다.

[위치]

경의재사성재는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4길 31-5[노곡동 204]에 있다. 앞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뒤에는 함지산이 있다.

[변천]

경의재는 1900년에 창건되어 1991년에 중건하였다. 사성재경의재를 중건한 1991년에 창건되었다.

[형태]

경의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사성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현황]

김문기의 유허비 비각인 태충각(泰忠閣)을 중심으로 비각의 좌측에는 경의재가, 우측에는 사성재가 자리 잡고 있다.

[의의와 평가]

1791년(정조 15)에 단종을 위하여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編定)할 때, 김문기는 삼중신(三重臣)[민신(閔伸), 조극관(趙克寬), 김문기]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여섯 사람은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 의하여 ‘사육신’에 선정되었다.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사육신 문제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顯彰)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김문기를 추모하는 재실인 경의재는 사육신의 충의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재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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