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52
한자 泗陽精舍
영어공식명칭 Sayangjeongsa
이칭/별칭 사양서당(泗陽書堂),사양서원(泗陽書院)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8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17년연표보기 - 사양서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51년 - 사양서당으로 중건
이전 시기/일시 1694년 - 사양서원으로 승격
훼철|철거 시기/일시 1871년 - 사양서원 훼철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4년 - 사양정사로 복원
현 소재지 사양정사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811 한강근린공원 내지도보기
원소재지 사양서당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동서원길 15-10[신리 43-1]
성격 강학 장소
양식 맞배지붕 누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청주정씨 문목공파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정구의 마지막 강학소.

[개설]

사양정사(泗陽精舍)의 전신인 사양서당(泗陽書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사후 30년인 1651년(효종 2)에 중건되어 정구를 추모하고 강학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후 1964년(숙종 20)에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로 이건하고 사양서원(泗陽書院)으로 높여 불렀다.

[위치]

현재의 사양정사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한강근린공원 내에 있다.

[변천]

1617년 건립된 사양서당은 정구의 강학 장소였다. 당시 문인들이 정구의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1651년(효종 5)에 정구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배향(配享)한 서원을 건립하였다. 사양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훼철되었다. 이후 칠곡향교, 문목공대종회, 달구벌 얼 찾는 모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협력으로, 2014년 사양서당 강당을 모델로 복원되었다.

[형태]

사양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풍판을 단 맞배지붕의 누정 형식이다.

[현황]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사양서원은 강당인 경희당만 남게 되었다. 경희당은 칠곡군 지천면 신리 43-1에 있다.

[의의와 평가]

사양정사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맥을 섭렵한 대구 유학의 중시조 격인 한강 정구의 학문과 사도(師道)를 담고 있으며, 정구의 만년 학문적 삶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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