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89
한자 獨立運動家
영어공식명칭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부여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물.

[개설]

2022년 현재 충청남도 부여 출신 독립운동가 또는 부여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68명이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을 받았다. 훈격별로는 대한민국장 1명, 독립장 4명, 애국장 17명, 애족장 35명, 건국 포장 2명, 대통령 표창 9명 등이다.

[의병 전쟁]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단발령 이후 의병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충청남도 지역에서는 홍주의병(洪州義兵)이 봉기하였다. 1906년 다시 봉기한 홍주의병에는 부여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홍주의병에 참여한 부여인은 이용규, 홍순대, 조병두, 송순묵, 이한구, 이규철, 신봉만, 이성택, 정용은, 이덕현, 권운택, 한기안, 한사용, 한성수, 한학삼, 이성범, 김광옥, 정관신, 이박원, 김판돈, 박덕근, 이성우 등이다.

[애국계몽운동]

부여에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의 후신으로 설립된 대한협회(大韓協會)의 지회가 설치되었다. 임천면 내동리[현 비정리] 출신 김도희는 신민회(新民會)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단연동맹회(斷煙同盟會)와 국채의연소(國債義捐所)가 설립되어 국채보상운동도 전개하였다. 사립학교 설립도 활발하여 1908년, 11개의 사립학교에 23명의 교원과 415명의 학생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3.1운동]

부여의 3·1 운동은 1919년 3월 2일 천도교구를 통하여 김태호가 「독립선언서」를 수령하며 시작되었다. 김태호가 배포한 「독립선언서」를 받아 박성요규암면 규암리, 조원상중정리염창리, 김덕빈염창리, 최규석은 부여면 구교리[현 부여읍 구교리]에서 은산면에 이르는 도로에 살포하였다. 이후 3월 6~7일 임천면, 은산면, 부여읍, 홍산면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국내 독립운동]

부여 지역에서는 1910년도 독립의군부와 대동단 등 비밀 단체 활동이 있었다. 규암면 외리 출신 이건호는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인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였고, 규암면 합송리 출신 김백순·김형제·이창호, 규암면 노화리 출신 노재철 등은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에 참여하였다. 천도교도들은 3·1 운동 이후 기도미(祈禱米) 납부 운동과 성미(誠米) 납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에는 홍산청년회, 규암청년회, 구룡청년공지회, 임천청년회, 부여청년회 등이 설립되었다.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혁명적 농민조합도 만들어졌으며 화성당(火星黨),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 대야구락부(大也俱樂部) 등의 비밀 결사도 활동하였다. 1929년 설립된 교육 기관인 광일의숙은 1930년대 장정야학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였다.

[국외 독립운동]

부여인의 국외 독립운동 또한 국내 못지 않게 활발하였다. 장암면 장하리 출신 강석기·강철구 부자가 대종교(大倧敎)·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서 활동하였고 은산면 가곡리 출신 박영희는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활약하였다. 세도면 청송리조중구, 석성면 봉정리강영직, 부여읍 가증리천병림·천병만 등은 무장 투쟁 단체 의열단(義烈團)에서 활동하였다. 초촌면 응평리 출신 임병직은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무관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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