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18
한자 石木里 二百二十四-三 一圓 遺蹟
영어공식명칭 Seokmok-ri Buye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 224-3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6월~2005년 2월 - 석목리 224-3 일원 유적 1차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12월 - 석목리 224-3 일원 유적 2차 조사
현 소재지 석목리 224-3 일원 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 224-3 일원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에 있는 백제 시대 유적.

[개설]

석목리 224-3 일원 유적은 부여-탄천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로 확인된 백제 시대 유적이다. 2004년 6월부터 2005년 2월 1차 조사가 이루어졌고, 2007년 12월 2차 조사가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백제 시대 건물지 7기, 주거지 5기, 조선 시대 주거지 1기, 동나성의 성벽을 확인하였다.

[위치]

석목리 224-3 일원 유적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 224-3번지 일원에 있다. 조사 지역 남동쪽에 있는 높이 150m의 정상부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구릉성 대지에 있다.

[형태]

석목리 224-3 일원 유적에서 조사된 생활 유구는 백제 시대 건물지 7동, 주거지 5기가 확인되었다. 건물지 가운데 기단만 확인되는 유구는 1호, 3호, 6호, 7호가 있으며, 굴립주건물지는 2호[정면 2칸, 측면 1칸], 4호[정면 2칸, 측면 2칸]이다. 초석건물지[기단 확인]는 5호가 확인되는데, 석목리 224-3 일원 유적에서 가장 양호한 상태이다. 출토 유물은 기와, 연화문수막새, 세발그릇, 뚜껑접시, 동이, 자배기, 대형호 등이며, 연화문수막새의 경우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확인되는 양식과 유사하여 사비 시기 늦은 시기에 조영된 유구로 추정하고 있다.

주거지는 5기가 확인되는데 부정형, 방형의 형태이며, 2호에서는 부뚜막 시설이 확인되었다. 3호는 벽구 시설이 확인되는 대벽건물지로 4~5호는 벽 쪽에 붙어서 주공이 확인된다. 출토 유물로 짧은목항아리, 자배기, 동이, 깊은바리토기, 뚜껑접시, 세발그릇, 시루, 기와편 등이 확인되었다.

성벽 유구는 나성[동나성 구간]으로 조사된 성벽인데, 잔존 길이는 약 63m, 잔존 높이 3.4m 이다. 협축식이며 성벽 너비는 약 4m이다. 성벽 조성은 자연 퇴적층[기반토]을 'L'자로 굴광하여 성벽을 조성하고 뒤로 뒤채움토를 판축하면서 조영하였다. 뒤채움토는 약 8.5m 정도 남아 있으며 총 6차에 걸쳐 판축이 이루어졌다.

성 내부의 판축 과정을 크게 3단계로 정리되는데, 1단계는 구지표 위에 협축 구간을 중심으로 40㎝ 두께로 성토층을 조성하였고, 2단계는 성 안쪽에서부터 폭 3~3.6m, 높이 1~1.8m 정도 판축부를 성벽 쪽으로 3차에 걸쳐 단계적으로 구축하여 성 내부를 채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판목을 이용하여 판축부를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3단계는 판목을 이용하지 않고 성 외벽 쪽에서부터 안쪽 방향으로 약간 경사지게 넓고 수평적인 판축다짐을 하여 성벽의 상부를 구축한 것으로 보았다. 면석은 품자형으로 다듬은 할석을 이용하여 약 80도의 경사를 이루며 쌓아 올렸는데 불규칙적으로 조영하였다. 성벽의 경우 출토 유물은 없으며, 성벽 뒤채움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백제 사비 시기로 측정되었다.

[현황]

석목리 224-3 일원 유적에는 현재 부여-탄천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 224-3 일원은 군사 시설 및 관영 건물과 같은 중요한 성격의 건물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건물지와 주거지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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