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98
한자 金秊洙
영어공식명칭 Gim Yeonsu
이칭/별칭 판흥(判興),수당(秀堂)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김연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7년 - 김연수 영신학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1년 - 김연수 교토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김연수 삼양사 설립
몰년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 김연수 사망
출생지 김연수 출생지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거주|이주지 김연수 이주지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영신학원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교토대학 - 일본
성격 기업가
성별
본관 울산
대표 경력 삼양사 사장

[정의]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기업가.

[가계]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수당(秀堂), 아명은 판흥(判興)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유명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동복 현감을 지낸 호남 거부 김경중(金暻中)이며, 어머니는 장흥 고씨(長興高氏)이다. 형은 어려서 큰아버지인 김기중(金祺中)에게 입양되었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이다.

[활동 사항]

김연수(金䄵洙)[1896~1979]는 1896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로 옮겨와 아버지 김경중이 고향 줄포에 세운 영신학교(永信學校)에 들어갔다. 1911년 형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京都]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귀국하여 1924년 삼양사를 설립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조선식산조성재단[1928], 조선저축은행[1929], 조선공업협회[1930], 조선신탁주식회사[1932] 등 수많은 친일 단체에서 주요 역할을 맡는 등 일제와 제국주의 군부에 헌금, 위문금, 기부금, 단체 출연금 등을 내고 여러 차례 훈장을 받았다. 일제가 아시아 침탈을 본격 개시한 1942년에는 멸사보국으로 일제에 충성하자고 선동했고, 1943년에는 일제의 징병제 제창을 조선인에게 ‘무상의 광영’이라며 선전하는 등 광복 때까지 일제에 충성하며 기득권을 유지했다.

광복 후인 1949년 1월에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다가, 8월 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풀려났다. 1967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수당초등학교를 설립했고, 줄포초등학교와 수당초등학교 학생 35명에게 수당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 인명사전』에는 친일 행적에 관한 기록과 함께 친일 행위자로 등록되어 있다. 김연수의 아들 김상협(金相浹)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서 태어났으며 후일 고려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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