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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861
한자 萬石公所
영어공식명칭 Manseok Catholic Church|Manseok Gongso
이칭/별칭 만석천주교회,천주교 만석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사창길 112[남포리 61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병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83년연표보기 - 만석공소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30년 - 만석공소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사창길 112[남포리 614]로 이전
현 소재지 만석공소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사창길 112[남포리 614]지도보기
성격 공소
설립자 리우빌 신부
전화 063-581-0241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줄포성당 소속 공소.

[개설]

만석공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만석리[현 남포리 만회마을]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공소 예절 및 각종 신자 모임을 갖는 신앙생활 공간의 중심이다.

[설립 목적]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에 대한 천주교 진리 전파와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 유지를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만석공소의 역사는 1883년(고종 2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도를 담당했던 리우빌(Liouville) 신부가 1883년 부안의 만석동공소를 방문하여 17명의 고해성사를 들어 주었으며 26명의 신자를 보고하였다. 만석공소보다 한 해 앞서 등장한 납틔공소, 공작공소, 대소공소, 사창공소도 있었으나 만석공소만이 오늘날까지 맥을 잇고 있다. 만석동공소는 충청도에서 이주한 김덕연 루카 집안과 전라남도 장흥에서 이주한 김기옥 미카엘 집안이 터를 다졌다. 김덕연은 천주교 전주교구 초대 교구장인 김양홍 스테파노 주교의 아버지로 초대 공소 회장을 지냈다. 1915년 김덕연의 큰아들 김양희가 2대 공소 회장이 되면서 본인의 밭에 4간 겹집의 공소를 마련했고, 신자가 300여 명으로 늘었다.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1910년대까지 전라북도 부안에서 신자 수는 무내미공소가 가장 많았고, 신앙심은 만석공소가 가장 깊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전라북도 전주 배재본당 소속이었다가, 1895년(고종 32) 이후 김제 수류본당 소속이 되었다. 1903년(고종 40) 이후 전라북도 정읍 신성리본당 소속을 거쳐 1926년 등용본당 소속이 되었고, 1935년에는 부안본당 소속으로 바뀌었다. 1930년에는 현 위치로 공소 건물을 뜯어 옮겼으나 6·25 전쟁으로 크게 훼손되어 1958년 기와집으로 다시 신축하였다. 2000년 5월 7일에는 건평 82.64㎡ 규모의 철골 슬래브 벽돌 건물의 현 공소를 완성하였다. 현재 신자 수는 18세대 30명이다. 경당 내부와 함께 예수 성심상이 있는 경당 밖 정원도 예쁘게 단장되었으나, 공소에서는 더 이상 미사나 공소 예절을 하지 않고 줄포본당으로 다니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만석공소는 사제와 수도자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주교 전주교구 초대 교구장 김양홍 주교를 비롯하여 김창현, 김영태, 김치삼, 서용복 신부, 그리고 4명의 타 교구 사제와 1명의 수사 및 4명의 수녀를 배출하였다.

[현황]

공소 회장은 표병호 레오이고, 신자 수는 18세대 30명이다. 미사 및 공소 예절은 없으며, 줄포본당에서 미사를 진행한다.

[의의와 평가]

만석공소는 1883년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시작한 신앙 공동체로서 일제 강점기와 현대사의 굴곡을 이겨내며 천주교 신앙의 맥을 이어왔다는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심산궁곡에 자리한 공소에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신자들의 이농과 고령화로 신자 수가 줄어 줄포본당에서 미사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만석동 신자들의 보금자리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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