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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19
한자 金湍
영어공식명칭 Gim Dan
이칭/별칭 지숙(止淑),수분와(守分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6년연표보기 - 김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김단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55년 - 김단 장흥고 직장, 의금부 도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6년 - 김단 회덕현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71년연표보기 - 김단 사망
출생지 김단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지도보기
부임|활동지 김단 부임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부임|활동지 김단 부임지 -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사당|배향지 옹정서원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지도보기
성격 문신|의병장
성별
본관 부안(扶安)
대표 관직 회덕현감|신령현감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김단(金湍)[1606~1671]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지숙(止淑), 호는 수분와(守分窩)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행창락도 찰방(行昌樂道察訪)을 지낸 김광(金光)이며, 아버지는 김태복(金泰福)이다.

[활동 사항]

김단은 1606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석계(石溪) 최명룡(崔命龍)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여 이름을 떨칠 정도로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19세 때인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최종 합격하였는데, 그해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하여 인조가 충청도 공주(公州)로 피난한다는 소식을 듣더니 의병을 모아 북상(北上)하여 반군을 무찔렀다. 또 1636년(인조 14)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 고홍건(高弘建) 등과 함께 격문을 사방에 전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와왔으며, 이후로는 문을 닫고 학문에만 힘썼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김단의 학문을 알고 그를 조정에 천거하니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이후로 1655년(효종 6)에 장흥고 직장(長興庫直長),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1656년(효종 7)에 회덕현감(懷德縣監)[회덕현은 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일대에 있던 옛 고을] 등을 거쳐 신령현감(新寧縣監)[신령현은 현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으로 옮겼다가 이곳을 마지막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1671년(현종 12)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고을 사림에서 김단의 성심과 학문을 기리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 있던 옹정서원(甕井書院)에 위패를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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