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바위와 칠형제의 죽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27
한자 七星- 七兄弟-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소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현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칠성바위와 칠형제의 죽음」 『보령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성주산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지도보기
성격 바위 유래담|바위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칠형제|오랑캐
모티프 유형 암석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소송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바위와 관련한 이야기.

[개설]

「칠성바위와 칠형제의 죽음」보령시 남포면에 자리한 성주산(聖住山)에서 오랑캐를 무찌르다가 죽은 칠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칠성바위에 투영되어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칠성바위와 칠형제의 죽음」은 1991년 보령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보령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우왕(禑王)[재위 1374~1388] 때 오랑캐가 보령까지 침입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집과 재산을 버리고 떠났지만, 칠형제는 마을을 지키며 오랑캐와 맞서 싸웠다. 칠형제는 낮에는 산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어둠을 이용해 오랑캐를 무찔렀다.

어느 날 셋째가 집 근처에 숨어들었다가 오랑캐에게 잡힌 부녀자들을 발견하였다. 칠형제는 궁리 끝에 오랑캐가 타고 온 배를 불살라 버려 그들을 구해내기로 하였다. 칠형제가 배에 불을 지르자 오랑캐는 배의 불을 끄기 위해 배 쪽으로 몰려갔다. 그 틈을 타 칠형제는 부녀자들을 모두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배가 없어 돌아가지 못하는 오랑캐는 더욱더 발악하기 시작하였다. 오랑캐는 마을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기 시작했고, 먹을 것을 찾아 점점 산으로 올라왔다. 그 때문에 칠형제는 쉽게 오랑캐를 무찌를 수 있었다.

오랑캐의 수가 점점 줄어들자 칠형제는 한낮에 마을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때 어디선가 오랑캐의 무리가 괴성과 함께 칠형제에게 덤벼들자 칠형제는 산으로 올라가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에서 칠형제는 모두 죽고 말았다. 그들이 죽자 하늘에는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더욱 거세지는 비는 봉우리에 깔린 오랑캐의 시체를 떠내려가게 하였다. 그리고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산봉우리에서 바위가 일곱 개 솟아났다. 이에 마을을 지키다 죽은 칠형제가 바위가 되어서도 마을을 지킨다고 해서 ‘칠성바위’라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칠성바위와 칠형제의 죽음」의 주요 모티프는 암석 모티프이다. 노략질을 일삼는 오랑캐를 무찌르며 마을을 지켜낸 칠형제라는 민중적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바위 전설로 전승되고 있다. 위기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칠형제를 신격화하여 바위에 투영하고, 그 바위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전승시키고 있다. 더욱이 비를 통해 봉우리에 깔린 오랑캐의 시체를 떠내려가게 한다는 것은 산신 신앙과도 관계하는데, 산신은 산에 더러운 것을 비를 통해 씻겨 내려가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뭄이 들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산에 기우제를 지낸다. 그때 여인들은 산에 방뇨하기도 한다. 산신이 그 방뇨를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역민의 산신 신앙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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