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95
한자 李枝馨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8년연표보기 - 이지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4년 - 이지형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45년 - 이지형 남포현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9년 - 이지형 칠곡부사로 칠곡 칠곡산성 보수
활동 시기/일시 1652년 - 이지형 전라병마절도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6년 - 이지형 평안병마절도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66년 - 이지형 삼도수군통제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69년연표보기 - 이지형 사망
부임|활동지 부임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
부임|활동지 부임지 - 전라남도 강진
부임|활동지 부임지 - 경상남도 통영
사당|배향지 영세불망비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봉덕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전의(全義)
대표 관직 오위도총부도총관

[정의]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인 남포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무신.

[개설]

이지형(李枝馨)[1608~166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을 두 차례 연임하였다. 아들 이세선(李世選)이 남포 장수 황씨 황대명의 사위가 되었으며, 손자가 남포에 세거하는 등 보령 지역과 인연이 깊다.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이진경(李眞卿)이며, 충청남도 보령에 세거한 이광조(李光肇)가 손자이다.

[활동 사항]

이지형은 1644년(인조 22) 37세 나이로 무과에 1등으로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45~1648년까지 남포현감을 연임하였는데, 당시 역적 홍영진(洪榮振)을 체포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칠곡부사(漆谷府使)가 되었는데 1649년(인조 27) 군향(軍餉)[군대의 양식]을 포기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마침 칠곡산성을 수보(修補)해야 하는 때였으므로 다시 복귀하였다. 1652년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가 되었고, 1656년 평안병마절도사(平安兵馬節度使), 1664년 동래부의 좌병사, 1666년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세병관(洗兵館)을 개축하였다.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에 올랐으며 아들 이세선(李世選)도 무과에 올라 통제사를 지냈는데, 남포의 세거사족 장수 황씨 황대명의 사위가 되어 남포에 터를 잡았다. 이세선의 둘째 아들 이광조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봉덕리를 중심으로 세거해 왔다. 집안에서 많은 무장(武將)을 배출하였다.

[묘소]

이지형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에 있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봉덕리이지형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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