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71
한자 李來
이칭/별칭 낙보(樂甫),경절(景節),이내(李徠),안국(安國),계림군(鷄林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62년연표보기 - 이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71년 - 이래 전객녹사에 특임
활동 시기/일시 1383년 - 이래 문과에 급제함.
활동 시기/일시 1389년 - 이래 우사의대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92년 - 이래 정몽주가 살해 혐의로 계림 유배
활동 시기/일시 1399년 - 이래 좌간의대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0년 - 이래 좌명공신 2등 책록
활동 시기/일시 1402년 - 이래 첨서승추부사·대사간·공조판서 역임
활동 시기/일시 1404년 - 이래 정조사로 명나라 파견
활동 시기/일시 1405년 - 이래 예문관대제학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7년 - 이래 경연관·좌빈객 역임
활동 시기/일시 1408년 - 이래 지의정부사 겸 판경승부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16년연표보기 - 이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422년 - 이래 태종 묘정에 배향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대사헌|공조판서

[정의]

태종 묘정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이래(李來)[1362~1416]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정몽주 시해 사건에 연루되고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태종 이방원의 충직한 신하였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내(李徠), 자는 낙보(樂甫)·안국(安國)이다. 아버지는 우정언(右正言) 이존오(李存吾)[1341~1371], 어머니는 여흥 민씨 민선(閔璿)의 딸이다. 부인은 무송 윤씨 윤동명(尹東明)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래는 우현보(禹玄寶)[1333~1400]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 기록된 졸기(卒記)에 이래의 생애가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래의 아버지 이존오는 1371년(공민왕 20) 신돈(辛旽)[?~1371]의 처벌을 주장하다가 죽을 뻔하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거듭된 구원으로 이존오는 죽음을 면하고, 장사감무(長沙監務)로 폄출(貶出)[벼슬을 박탈하고 물리침]되었으나, 분개하는 마음이 병이 되어 사망하였다. 신돈이 처형된 이후 공민왕(恭愍王)[재위: 1351~1374]은 그제야 깨닫고 이존오를 증직하면서, 이존오의 어린 아들 이래가 겨우 10살이었지만 어필로 ‘간신(諫臣) 이존오(李存吾)의 아들’ 이라 써서 전객녹사(典客錄事)를 제수하였다.

1383년(우왕 9) 문과에 급제하고, 공양왕(恭讓王)[재위: 1389~1392] 때에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에 올랐다.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살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계림(鷄林)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서 공주[현 충청남도 공주시] 석탄의 별업에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1399년(정종 1)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등용되고, 이듬해인 1400년에 이방간(李芳幹)[?~1421]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곧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었고, 계림군(鷄林君)으로 봉작되었다. 태종 대에 첨서승추부사(僉書承樞府事), 대사간, 공조판서를 지내고, 1404년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곧 대사헌이 되었다. 이듬해인 1405년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경연관(經筵官)을 거쳐 세자의 스승인 좌빈객(左賓客)을 지냈으며, 1408년에 지의정부사 겸 판경승부사에 이르렀다. 이해에 병이 깊어져서 세자가 직접 찾아와 살폈고, 곧 사망하자 세자가 놀라 슬퍼하였고, 사신을 보내 사제(賜祭)[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지내 주던 일]하였다.

경주 이씨 집안이 보령에 세거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였는데, 이래의 처가인 무송 윤씨 또한 남포[보령]에 세거하던 성씨이다. 이래는 고려 말~조선 초의 혼란한 시기에 고려 조와 조선 조에서 모두 관료 생활을 하였다. 고려 말에 충청남도 공주에 은거하였던 시기 외에는 주로 개성과 서울에서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래의 후손들이 보령 지역에 대를 이어 거주하면서, 이래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추숭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태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두산백과 두피디아(https://www.doopedia.c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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