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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349
이칭/별칭 벌뚝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소황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섬밭 - 충청남도 보령시
해당 지역 소재지 섬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지도보기|소황리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소황리에 있었던 밭.

[개설]

후빙기 초기의 익곡(溺谷)[지반의 침강이나 해면의 상승으로 육지에 바닷물이 침입하여 해안에 생긴 골짜기] 만입지(灣入地)는 점차 메워지면서 만입지 자리에 간석지(干潟地), 사구(砂丘), 사취(砂嘴)[모래가 해안을 따라 운반되다가 바다 쪽으로 계속 밀려 나가 쌓여 형성되는 해안 퇴적 지형. 한쪽 끝이 모래의 공급원인 육지에 붙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등의 지형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차(潮差)가 크고 만입지가 많은 보령 지역에서는 특히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간석지는 계속 성장하게 되면 고도가 높아져서 보통의 사리 때에는 물에 잠기지 않아 염기가 많은 환경에서도 견디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이 성장하는 염생습지가 내륙 쪽으로부터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염생습지를 보령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농경지로 이용해 왔는데, 이것은 일종의 해안 평야 지형이며, 동시에 바다의 퇴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해성(海成) 퇴적 평야이다.

보령 지역에서 해성 퇴적 평야 형태의 평야는 남곡동평야, 웅천읍 독산리평야, 간사지들[오천면 원산도 북부 해안], 노천들[웅천읍 노천리], 신현들[천북면 신죽리]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해안 평야는 대부분 간척되어 논으로 변한 간척 평야에 해당한다. 특히 해성 퇴적 평야 형태의 해안 평야 중 웅천읍 독산리소황리 일대의 평야에는 ‘섬밭’이라고 불리는 주변 평야보다 약간 높은 지형이 있었다.

[명칭 유래]

섬밭은 들 가운데 있으면서 주변보다 조금 높아서 ‘섬’처럼 생긴 지형이고, ‘밭’으로 이용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벌뚝’이라고도 불린다.

[자연환경]

웅천읍 독산리소황리 앞 들판에는 섬처럼 생긴 지형이 있었다. 높이는 5~6m 정도로 모래 또는 실트(silt)[모래와 찰흙의 중간 굵기인 흙]질로 되어 있으며, 현재의 최고 해수면보다 1~2m 정도 높다. 들 가운데 있으면서 섬처럼 생기고 밭으로 이용되어 ‘섬밭’으로 불렸는데, 과거 후빙기 고해수면의 증거이거나 고사구(古沙丘)[마지막 빙하기인 1만 년 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사구]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섬밭이 있는 들판 바닥의 자갈층은 모난 자갈이기 때문에 바다에 의해 퇴적된 것이 아니고, 빙하기 저해수면 상황에서 침식되면서 운반되어 쌓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독산리소황리 앞 들판의 섬밭은 경지 정리로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현황]

웅천읍 독산리 일대의 해안 평야와 섬밭은 퇴적층 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어서, 해안 평야와 섬밭의 퇴적상과 퇴적 시기가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독산리평야는 서해안에 면해 있으나, 소황사구로 가로막혀 있어 파랑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아 예부터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 논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독산리평야에는 주변 평야보다 2m 정도 높은 섬밭 지형이 10여 곳 있었다. 1989년 경지 정리가 이루어져 중앙에 깊은 수로를 굴착하면서 독산리평야 전체의 퇴적층을 관찰할 때 섬밭의 퇴적층도 함께 관찰할 수 있었다. 당시 수동식 시추기로 중앙 수로 바닥에서 약 5m 정도 시추하여 퇴적층을 조사하였다.

독산리평야의 퇴적층을 전체적으로 보면, 기반암 풍화층 위에 자갈층이 덮여 있고, 자갈층 위에 0.5m 내외의 토탄층(土炭層)이 있으며, 토탄층 위로 암회색 머드(mud)와 실트층이 2m 정도 나타나고, 최상부에는 실트질 모래층이 나타난다. 바닥의 자갈층은 주로 모난 자갈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평야의 퇴적층은 바다에 의해 퇴적된 것이 아니고, 빙하기 저해수면 상황에서 침식되면서 운반되어 쌓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갈층 위에 있는 토탄층은 주로 목본의 뿌리, 줄기, 잎, 열매 등으로 되어 있는데, 목본의 뿌리는 모두 수직으로 박혀 있어 현지에서 자라다 토탄화된 것으로 보인다. 목본의 뿌리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하여 C14 연대 측정을 실시하였는데, 현재 기준으로 2290±220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섬밭은 현재의 최고 해수면보다 약 2m 높아 밭으로 이용되었는데, 섬밭을 이루고 있는 퇴적물이 조간대(潮間帶)[만조 때의 해안선과 간조 때의 해안선 사이의 부분] 퇴적물인지 사구 퇴적물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입도 분석을 실시한 결과, 섬밭 퇴적물은 대략 점토 10%, 실트 50%, 모래 40%로 현재의 조간대 퇴적물 구성과 유사하였다. 또한 섬밭 퇴적층 속에 과거 조간대 생물의 흔적들이 나타나서 퇴적층이 조간대 환경에서 퇴적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독산리평야에 나타나는 섬밭은 과거 고해수면의 증거로 추정된다.

섬밭의 하나인 벌뚝의 퇴적층 속에서는 백제 시대의 높은 굽달린 술잔 토기 파편이 출토되어 백제 시대에도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벌뚝은 섬밭 중 내륙 깊숙히 있는 섬밭으로 집이 1채 있었으며, 상부는 가는 모래, 하부는 갯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경지 정리로 없어졌다.

웅천읍 독산리소황리에 모두 12개의 섬밭이 있었기 때문에 풍수상 ‘12첩 반상’과 같다고 여겨, 여기에 묘를 쓰면 12첩 반상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따라서 섬밭과 주변에는 묘가 많았다. 웅천읍 독산리의 어원이 된 ‘홀뫼’라는 말도 ‘섬밭’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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