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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87
한자 湖西地域 巨石文化- 中心 保寧- 先史人-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손준호

[정의]

호서지역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 거석문화 중심 충청남도 보령의 고인돌 현황과 특징.

[개설]

충청남도 보령에만 3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여 호서지역 최대 밀집지에 해당한다. 형식은 탁자식, 바둑판식, 덮개식이 확인되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중심 시기는 청동기 시대 후기로 추정되며, 같은 시기의 대형 마을도 조사되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집단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발굴 조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아 아직까지 그 문화상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동기 시대 개관]

청동기 시대는 금속기를 처음 사용한 시기로, 도구 제작 기술상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던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생산량의 증가와 함께 교역의 확대, 계층의 분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한다.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들로 생산 유구와 저장 시설의 증가, 대규모 마을의 형성, 고인돌의 축조, 비파형동검과 같은 신분을 상징하는 도구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청동기 시대가 청동기로 대표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청동기는 특별한 계층이 제한적으로 소유하였으며 이후 초기 철기 시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청동기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유물은 토기와 석기인데, 토기는 신석기 시대와 달리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석기는 신석기 시대에 처음 등장한 돌을 가는 기법이 더욱 발전하여 대부분이 간석기로 제작된다.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송국리문화의 등장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데, 이는 사회의 내적 혹은 외적인 변화와 그 사회의 기반인 생업 활동 등의 전반적인 면을 고려한 시기 구분이다. 송국리문화의 내적 변화는 주거 형태나 마을 유형의 변화, 송국리식 토기와 새로운 청동기의 등장, 그리고 논농사의 확산과 정착적 농경 사회로의 재편 등으로 나타난다.

[청동기 시대의 보령]

청동기 시대가 되면 보령 지역에 대한 인간의 점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대형 마을 유적의 존재나 다수의 고인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전기와 후기의 유적이 모두 조사되었으며, 특히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전기 유적은 대부분이 주거 중심 마을로, 관산리, 구룡리, 주교리, 명천동, 옥서리, 두룡리, 창암리·황율리 등지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이 대다수이며, 내부 시설로는 무시설식이나 구덩식 화덕 자리가 1개 또는 복수로 설치되어 있다. 일부 집자리에서는 돌두름식 화덕 자리도 발견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 골아가리토기, 짧은빗금무늬토기와 이러한 무늬가 조합된 토기류, 턱자루식 간돌검, 턱슴베식 간돌살촉, 삼각오목간돌살촉, 물고기모양돌칼, 배모양돌칼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구와 유물의 양상을 볼 때 보령 지역 청동기 시대 전기 유적은 대부분 역삼동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후기가 되면 유적의 수가 급증하는데, 관창리, 죽청리, 진죽리, 옷구치, 소송리, 평라리, 연지리 등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전기 유적 가운데 명천동, 구룡리, 창암리·황율리, 주교리, 관산리에서도 후기의 유구가 조사되어,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마을이 점유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집자리는 대부분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를 설치한 송국리형 집자리이다. 집자리 이외에도 무덤, 소형 구덩이, 가마터, 굴립주 건물지, 논 등 유구의 종류와 수량이 전기에 비해 크게 증가한다. 유물은 송국리식 토기와 통자루식 간돌검, 통슴베식 간돌살촉, 삼각모양돌칼, 홈자귀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두드림무늬가 시문된 토기류인데, 주로 서해안 지역의 유적에서만 확인되어 지역성을 나타내는 자료라 할 수 있다.

한편, 무덤이 다수 축조되는 것도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이다. 고인돌이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는 양기리, 화산동, 노천리, 달산리, 관창리, 평라리, 소송리, 죽청리, 주교리 등이 있으며, 송국리문화의 무덤인 돌널무덤, 돌뚜껑 움무덤, 독널무덤이 확인된 유적으로는 명천동, 평라리, 관창리, 관당리, 관산리, 노천리, 창암리·황율리, 의평리 등이 있다. 평라리 유적, 관창리 유적, 노천리 유적에서 고인돌과 송국리문화의 무덤이 함께 분포하는 것을 볼 때, 무덤 역시 대부분 청동기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령 거석문화의 현황과 특징]

1. 고인돌의 분포와 특징

호서지역 고인돌의 분포는 크게 서해안 일대와 금강 유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령은 서해안 일대에서도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데, 300여 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어 호서지역 최대의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몇 기의 고인돌이 하나의 무리를 이루는지에 대한 분석에서도 무리당 평균 6.34기로 계산되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은 집중도를 나타낸다. 대천 지역을 중심으로 봉당천 주변의 남포면웅천천 주변의 웅천읍에 주로 분포하며, 대부분 구릉과 하천 주변의 충적지, 그리고 구릉과 충적지가 만나는 경계 지점에 자리한다.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 바둑판식, 덮개식 등이 확인되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탁자식과 바둑판식이 다수 발견되는 편이다. 특히 한반도의 북쪽에 주로 분포하는 탁자식 고인돌이 서해안 루트를 따라 남쪽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보령 지역의 자료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2. 발굴 조사된 고인돌 현황

보령 지역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300여 기에 달하지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표 조사에서 다수 고인돌이 보고되었으나 발굴 조사 결과 모두 백제 돌방무덤의 뚜껑돌임이 밝혀진 연지리 유적의 사례로 볼 때, 육안 관찰의 한계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좀 더 확실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굴 조사가 진행된 고인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고인돌도 덮개돌이 이동되거나 무덤방이 훼손되어 자세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략적인 상황을 언급하는 것만 가능하다. 보령에서 고인돌이 발굴 조사된 유적은 관창리, 평라리, 화산동, 주교리, 양기리, 노천리, 달산리, 소송리, 죽청리 등이 있다.

첫째, 관창리 유적은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발굴 조사되었는데, 확인된 1기의 고인돌은 완만한 구릉인 A구역에 자리한다. 형식은 탁자식이며 고인돌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돌널무덤 11기, 돌뚜껑 움무덤 1기, 독널무덤 1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껴묻거리는 돌널무덤에서 통자루식 간돌검 4점과 마디자루식 간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과 송국리문화의 무덤이 함께 분포하여, 양 무덤 형식의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후 2000년 관창리 346-3번지 일원에 대한 시굴 조사를 통해 총 3기의 고인돌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구릉에 자리하며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 1기, 바둑판식 2기이다.

둘째, 평라리 유적은 1995년 발굴 조사되었는데, 확인된 고인돌은 총 3기로 모두 묘역을 갖춘 덮개식에 해당한다. 하천변 충적지인 Ⅰ지구에 자리하며, 돌덧널무덤 4기, 돌널무덤 14기와 함께 하천 방향으로 2열 분포를 이룬다. 1열은 고인돌, 돌덧널무덤, 돌널무덤으로 구성된 반면, 다른 1열은 돌널무덤만으로 이루어져 차이를 보인다. 고인돌의 위치가 정해진 다음 그 주변에 돌덧널무덤과 돌널무덤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껴묻거리는 돌널무덤에서 슴베식 간돌검 1점이 출토되었을 뿐이다. 관창리 유적과 마찬가지로 고인돌과 송국리문화 무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셋째, 화산동 유적은 1997년과 2016년 2차에 걸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확인된 고인돌은 모두 8기이다. 곡부 충적지인 A지구에 7기, 구릉 아래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C지구에 1기가 자리한다. 고인돌이 지상에 노출되어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로, 남아 있는 덮개돌 6개 가운데 원래의 자리를 유지한 것은 3개뿐이다. 모두 받침돌이 확인되어 탁자식이나 바둑판식으로 추정되지만, 잔존 상태가 좋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C지구에서 조사된 1기는 장방형의 돌널이 지상에 노출된 탁자식이다. 유물은 고인돌 주변 도랑 유구에서 출토된 통슴베식 간돌살촉 1점이 유일하다.

넷째, 주교리 유적은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199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의 남쪽 구릉 사면에서 고인돌 1기가 확인되었는데, 형식은 탁자식이며 덮개돌과 2개의 받침돌이 쓰러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고인돌이 청동기 시대 전기의 방형 집자리 위에 자리한 것을 볼 때, 후기 송국리형 집자리와 동일한 시기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수한 시설로 고인돌 주변에 설치된 기둥 구멍들이 주목되는데, 고인돌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경사면 아래쪽으로는 약 2m의 간격을 이루며 1열로 배치되어 있다. 원형으로 둘러싼 기둥 구멍은 고인돌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경사면에 배치된 것은 무덤길과 관련된 구조물의 존재를 짐작게 한다.

다섯째, 나머지 유적들은 모두 주교리 유적과 마찬가지로 서해안고속도로 건설 공사 구간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진행되었는데, 유적별 고인돌의 수량은 양기리 13기, 노천리 6기, 달산리 5기, 소송리 3기, 죽청리 1기이다. 유적의 입지는 충적지에 자리한 노천리를 제외하면 모두 구릉에 해당하며, 고인돌의 형식은 죽청리 유적의 탁자식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덮개식이다. 죽청리 유적 고인돌 주변의 송국리형 집자리나 노천리 유적 돌널무덤 출토 통자루식 간돌검을 볼 때, 고인돌은 대부분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소송리 유적의 고인돌 무덤방에서는 백제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후대에 다시 이용한 사례로 주목된다.

3. 고인돌의 보존과 활용

문화재로 지정된 죽청리 고인돌과 지정되지 않은 관창리·화산동 고인돌이 현재 보존 및 활용되고 있다. 먼저 죽청리 고인돌은 총 12기가 확인되었는데,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면서 보령시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유적을 정비하였다. 현재는 안내판과 보호 펜스 등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주변에 정자와 벤치 등의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다음 관창리 고인돌은 2000년 조사된 3기 가운데 2기를 현지 보존, 나머지 1기는 주변 고인돌 공원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고인돌이 이전된 공원에는 안내판, 보호 펜스, 벤치 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현지 보존된 2기는 다리 아래에 자리하여 접근성이 떨어지며 시굴 조사 당시 설치한 트렌치로 붕괴 위험도 있다. 마지막 화산동 유적에서 조사된 고인돌은 A지구의 3기가 화산동 535-1번지로 이전 복원되었으며, C지구의 고인돌은 현지 보존되었다. 이후 C지구가 도로 확장 공사 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해당 고인돌도 청라면 향천리 642-9번지로 이전되었다. 안내판과 보호 펜스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보령 거석문화의 의의]

고인돌은 거석문화의 하나로 한국의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구이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는데,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대략 40,000여 기에 달한다. 청동기 시대 전기의 늦은 시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지만, 본격적인 축조는 논농사의 집약화가 이루어진 후기부터이다. 기능은 단순한 무덤 이외에 제단, 묘표, 집단의 영역 표시, 농경 사회의 기념물 등 다양하게 상정되는데, 조상의 무덤인 동시에 집단의 기념물인 고인돌을 축조함으로써 사회적인 통합과 결속력을 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령 지역에 분포하는 고인돌 역시 대부분 후기에 해당하며, 그 성격 또한 일반적인 고인돌과 비슷하다. 호서지역 고인돌의 최대 밀집지인 보령에서는 관창리 유적처럼 같은 시기의 초대형 마을도 확인된다. 따라서 보령 지역에는 당시 사회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집단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보령 지역의 특수한 지리적 조건, 즉 바다에 접하여 풍부한 해양 자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교역에서의 관문 역할을 통해 특수한 지위 획득도 가능하다는 점과 관련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령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해 그 문화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편이다. 고인돌의 경우 발굴 조사된 사례도 소수에 불과하지만, 보존 및 활용된 사례는 더욱 적다. 조사 및 연구의 활성화와 함께 활용을 위한 적절한 보존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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