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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암리·황율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35
한자 倉巖里·篁栗里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주산면 창암리|황율리|금암리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1년 - 창암리·황율리 유적 1차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3년 - 창암리·황율리 유적 2차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5년 6월 24일~2017년 5월 26일 - 창암리·황율리 유적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발굴 조사
이전 시기/일시 2016년 6월 28일~2016년 9월 29일 - 창암리·황율리 유적 돌방무덤 1기 보령문화의전당으로 이전
현 소재지 창암리·황율리 유적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주산면 창암리|황율리|금암리지도보기
성격 집자리|무덤
양식 방형·장방형·원형[청동기 시대 집자리]|돌방무덤[삼국 시대 무덤]|평면 방형·장방형·타원형[조선 시대 집자리]
면적 14,453㎡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주산면 창암리, 황율리, 금암리 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조선 전기 복합 유적.

[개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삼국~통일 신라 시대의 무덤, 조선 시대의 집자리, 건물지, 무덤 등이 확인된 유적이다. 청동기 시대 후기, 백제 웅진 시기와 사비 시기, 통일 신라 시대, 조선 전기의 주거 관련 시설과 무덤이 5개 구역에 각각 분포한다.

[조사 경위]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진한 장항선 개량 사업 시행에 앞서, 2011년과 2013년 2차에 걸쳐 대상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8개 지점에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한강문화재연구원이 시굴 조사와 발굴 조사를 차례로 진행하였다. 최종적으로 총 5개 구역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위치]

운봉산에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정상부와 사면 말단부, 그리고 운봉산 남쪽에 자리한 작은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있다.

[형태]

청동기 시대 집자리 19기, 소형 구덩이 4기, 돌널무덤 1기, 삼국 시대 돌방무덤 9기,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 4기, 조선 시대 집자리 5기, 소형 구덩이 24기, 불땐 유구 2기, 회덧널무덤 3기, 움무덤 6기와 돌무지, 담장, 배수로, 도랑 유구 등이 포함된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주거 관련 유구는 다구역·마구역·바-1구역, 무덤은 바-2구역·사구역에 주로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는 평면형에 따라 방형, 장방형, 원형으로 구분되며, 내부에 무시설식 화덕 자리를 갖춘 1기를 제외하면 모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형 집자리이다. 유물은 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토기, 붉은간토기, 갈판, 홈돌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의 돌방무덤은 무덤길[묘도]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되는데, 백제 웅진·사비 시기를 지나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이 만들어지는 시기까지 같은 공간에 무덤의 축조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돌방무덤에서 곧은입짧은목단지, 깊은바리모양토기, 창, 도끼, 망치, 큰 칼과 작은 칼, 금동 귀걸이, 허리띠 고리, 재갈, 발걸이, 관고리, 관못 등과 돌덧널무덤에서 뚜껑, 짧은목단지 등이 출토되었다.

조선 시대의 집자리는 평면 방형, 장방형, 타원형으로 나누어지고, 내부 시설로 구들이나 부뚜막이 설치되어 있다. 소형 구덩이는 저장과 관련된 용도가 추정되며, 건물지는 잔존 상태가 좋지 않아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유물은 분청자 접시, 분청자 발, 백자 접시, 백자 발, 도기 병,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조사된 유적은 기록 보존 후 공사가 진행되어, 현재는 원래의 계획대로 철도가 개설된 상태이다. 단, 돌방무덤 1기는 보령 문화의 전당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확인되어, 해당 지역이 오래전부터 인간의 이용에 유리한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이 짐작된다. 청동기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주거 관련 시설과 무덤,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에는 무덤이 어느 정도 구역을 달리하며 분포하는데, 시기에 따른 공간 활용 양상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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